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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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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신부님께

하나 뿐인 마음 2022. 1. 1. 21:13

신부님께. 제가 긴 글을 쓰려고 해요. 넓은 마음으로 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신부님 강론을 좋아해 귀쫑긋해서 듣는 편인데, 오늘은 한 문장이 마음에 좀 남았어요. 그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여자가 가장 예뻐지는 때는 엄마가 되었을 때다.”라는 의미의 문장이었어요. 오늘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인지도 알고 신부님의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지 않지만, 듣는 순간 염려가 되었어요. 염려와 더불어 그 말이 ‘엄마가 아닌 여자는 최고로 예뻐질 수 없다’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으며, ‘최고로 예뻐지는 것이 사람의(=여자의) 최고 목표’란 의미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신부님이 만나야할 사람들은 좀 더 달라진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일테니 이 즈음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도 필요하다 싶었구요.

염려는, 당장 그 강론을 듣는 이들 중에는 싱글로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매님들도 있었고 불임 부부나 형편이 어려워 결혼에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요. 어쩌면 신부님이나 제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운 이유들로 엄마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러니 신부님의 의도와 달리 그분들의 상처가 건드려질 수도 있다 싶었고요, 신부님의 온화한 성정 덕에 좋은 내용의 강론이 거부감 없이 필터링 없이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을텐데, 훌륭한 모성이 아주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해도 (여성의 최종목표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가 그 역할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데… 싶었습니다. 엄마가 꼭 되지 않거나 특히 되지 못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어그러지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요. 저는 신부님께서 이런 걸 알려주실 수도 있는 신부님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신부님 강론이 무슨 의도인지도 알고, 다수의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좋게 이해하고 받아 들였을 거라는 것도, 무엇보다 많은 어머니들과 그 어머니들의 자녀들은 그 말씀이 무엇인지 생을 통해 경험했기에 누구보다 감사하며 동의했을 거란 것도 압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일을 혼자 예민하게 걸고 넘어지는 건가, 혹 주제 넘은 말인가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보편지향 기도 때 불임 부부를 기억하며 기도했을 때 쉽지 않은 얘기지만 그래도 꼭 내가 해야겠구나, 특히 청년 미사 전에 얘기해야겠구나 마음 먹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여자이다 보니 경험치가 신부님과 달라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법 역시 좀 다르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신부님이 앞으로 만나실 청년들, 그 청년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여자가 가장 예뻐지는 때는 엄마가 되었을 때다.”라는 이 말에 걸려 넘어지지도 얽매이지도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도저히 저 혼자 이 말을 삼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바라며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신부님, 긴 글이라도 제 마음을 다 제대로 전달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달라져가는 세상이지만, 먼저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험난하더라도, 보이지 않더라도, 아직 생기지 않은 길마저 내어 가며 앞장 서는 것이 신부님들의 삶이니, (아, 평소 제 성격을 생각하면 좀 많이 어색합니다ㅎㅎㅎ) 신부님께서 수많은 신자들의 목자로 잘 살아가시도록,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길에 제 기도를 보탭니다^^

... 곧 답이 왔다. 전부를 옮길 수는 없고, "어렵게나마 꺼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ㅎ 그렇게까지는 생각 못해봤는데, 한 문장을 전달하기 위해 제가 너무 곁가지를 붙인것 같네요. 수녀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강론에는 희망적인 색깔이 들어가야 한다는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라는 답이 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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