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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하루하루 부르심따라 (156)
깊이에의 강요
또 다시 대림시기가 시작되었다. 예전엔 참 다짐도 많았었다. 이것저것 준비도 많이 하고, 잘 기다리는 데엔 충분한 준비가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준비하고 다짐하고 체크해 가면서 대림시기를 보냈었다.올해도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 기다림...이라고 써놓고 보니, 나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진실로 기다리고 있긴 한 건지에 생각이 미친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기다리는가?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내 자리에서 웅크리며 피하고 있으면서 그걸 기다림이라 부르진 않겠지.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별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면서 그걸 기다림이라 부르지도 않겠지. 간절히 원하며 기다리고 싶다.기다리며 무르익고 싶다.
마흔을 넘은 후 난 일 년에 두어번 주어지는 휴가와 어쩌다 생기는 혼자 남는 월요일을 반드시 나 자신을 위해 쓰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마흔이 되어 미국에 가서 살면서 집으로 가지 않는 휴가를 보내야 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새벽미사를 마치고 조금 잔 후 조조 영화를 보러 갔다가 점심으로는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저스틴 학사님과 함께 간 이후 못가본 현충원으로 출발. 오늘은 셔틀 타고 왔으니 미처 소주도 마른 명태도 준비하지 못했다. 다음에 올 땐 입구에서 내려서 미리 사들고 걸어와야겠다. 혼자 현충원에 다니던 게 대학생 때부터이니 20년 넘게 여길 혼자 다녔다. 처음엔 동대구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거기서 다시 대전행 버스를 타고, 대전 복합터미널에서 다시 ..
주여, 이 모진 세월에 자비를 베푸소서.주여, 되갚아주고 싶은 이들에게는 당신의 자비가 미치지 않았으면 하고 잠시나마 바랬던 저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성탄 이후 감기를 앓는 동안 입이 써서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마신다 해도 믹스 커피만 당길 뿐, 눈 앞에 Blue Bottle이 있는데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어제 저녁 겨우 이제 커피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중미사를 준비한 후 잠시 수녀원에 들어와 커피를 내렸다. 그리곤 어제 방송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오랜 만에 향긋한 커피향이 느껴진다 싶더니 1분도 지나지 않아 식도 끝까지 쓴맛이 내려갔다.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끝맛까지 쓰다. 지금도 입안에 남아 있는 쓴맛을 억지로 ..
주님,새해엔 제가 옳고 바른 것이 약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오해받더라도반드시 옳고 바른 길을 걷게 하소서. 그 길을 걷도록 만나는 이들을 응원하게 하시고 그 길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걷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그 옳고 바른 길을 걷기 위한 용기를 제게 허락하시고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약해지지 않도록 부디 제게 굳은 마음을 주소서. 그 옳고 바른 길이당신이 저를 부르시는 길이요,우리가 함께 가야할 길임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지워지지 않는 인호로제 심장에 새겨주소서.
어젠 할머니 수녀님과 마주 앉아 고구마 줄기 한 박스를 깠다. 본당 신자분이 직접 길러서 갖다주신 거라 너무 고마워서(원망스러워서ㅋㅋㅋ) 하나하나 까고 있는데, 정작 난 조용하고 지루한 일을 별로 안어려워하는 반면 괄괄하신 할머니는 1분 까고나선 고구마 줄기를 몰래 땅에 묻고 싶다고를 무한반복 ㅋㅋㅋ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세 드신 할머니 수녀님들이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곱게 나물 다듬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우리 할머니는 절대! 계속 땅에 묻고 싶다고 노래노래 하시고 나는 배를 잡고 웃느라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내가 똑똑 분질러가며 줄기 벗기는 걸 보고는 그런 방법이 있었냐며 놀라시다니ㅋㅋ
할머니 수녀님께 파스타 한 번 해드리고 싶어서 모처럼 짬을 냈다. 혼자 장 봐오고 일찍 부엌에서 소리를 좀 냈더니 나와 보시고는 이것저것 거드실 준비를 하시더니... 파스타 삶고 나니 찬물로 씻어 내시려고 준비하셔서 화들짝 놀라게 해주셨지. 그거 살짝 볶아야 한다고 말씀드리니 찬물에 빡빡 문질러 씻어야 쫄깃하고 맛있는 거 아니냐고. 내가 막 웃으니까 "씻지도 않은 걸 내보고 먹으라고." ㅎㅎㅎㅎㅎ 웃으면서 면 볶는다고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이번엔 고이 구워서 물이 잘 고인 버섯을 뒤집으셨고, 그거 수습하는 동안 면을 손으로 움큼 집으셔서 접시에 대충 놓고서는 데우지 않은 소스까지 확 끼얹어버리심ㅋㅋㅋ 예쁘게 모양 내서 담고 소스 뿌려드리려고 했는데 폭망 ㅎㅎㅎㅎ 그래도 맛은 괜찮음^^ 수녀님은 처..
우리 할머니 수녀님은 맨날 본인 음식은 적게 덜고도 많이 먹었다 하시고 남에겐 더 먹어라, 그거 갖고 되겠나, 남기면 어쩌냐 등등 하신다. 더 먹으라는 이유가 자상함이나 모성 같은 게 아니고 순전히 해결은 해야겠고 본인은 많이 못드셔서다. ㅋㅋㅋ 처음엔 말하기 어려워 너무 힘들었는데 친해지고 나선 나도 막 대꾸를 하게 되었다. 오늘도 떡국 끓여서 나만 한 가득 주시고는 남은 거 또 나에게 넣으시길래, 내가 얼마나 가득 먹은지 아시냐, 수녀님은 왜 고통을 나누지 않으시냐 했더니 본인 그릇도 가득 찼었다고 우기시는 게 아닌가! 난 물러서지 않고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며 조금 담아 두고 가득 담아뒀다 말하는 건 거짓말이니 어서 성사 보시라고 했는데... 할머니께서는 바로 "성사 보면 되지. 그게 어렵나!"하..
올해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가장 깊고 따뜻한 사랑으로 태어나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의(自意)와 이기심(利己心)으로 가득 찼던 나 자신을 비워야 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대림초를 켜고 예수 오심을 기다리는 동안, 타들어가고 녹아서 사라지는 시간을 거친 사람만이 아기 예수 누우실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음도 깨닫게 해주십니다. 기다리는 마음이 아무리 크다 해도 처음부터 네 개의 대림초에 서둘러 불을 켤 수 없듯이 우리들의 삶도 주님이 허락하시는 시간에 맞춰 서서히 밝아지겠지요. 손수 마련하신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리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