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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Tolle Lege (25)
깊이에의 강요
너희가 그 땅의 주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않으면, 너희가 남겨 놓은 자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에 바늘이 되어, 너희가 살아갈 그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민수 33,55) 수행자는 강을 건넌 후 타고 온 배를 태워버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다리를 타고 절벽에 올랐으면 사다리를 넘어뜨려야만 그 수행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길 떠나는 사람은 돌아올 여지를 남겨선 안 되는 법. 제때 처리하지 못한 어릴 적 상처와 감정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 없이 되살아나서 현실을 왜곡하고 제때 치유하지 못한 질병이 평생 그 사람을 약하게 만들 듯, 버려야할 때 버리지 못한 악습과 끊어버리지 못한 잘못된 욕심들, 정리하지 못한 인간 관계가 우리를 망치고 괴롭힌다. 이스라엘..
"너는 레위인들에게 증언판을 모신 성막과 모든 기물과 거기에 딸린 모든 물건을 맡겨라. 그들은 성막과 모든 기물을 날라야 하고, 성막을 보살피며 그 둘레에 진을 치고 살아야 한다.성막을 옮겨 갈 때에 레위인들이 그것을 거두어 내려야 하고,성막을 칠 때에도 레위인들이 그것을 세워야 한다....이렇게 레위인들은 증언판을 모신 성막을 지키는 일을 해야 한다."(민수 1,50-53) 사람은 저마다의 입장으로 성경을 읽을 것이다. 나 역시 내 고유한 입장을 가지고 말씀 앞에 선다. 그래서일 테다. 민수기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성막과 모든 기물을 나르는 데 드는 노동과 주의, 별것 아닌 것 같은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내 손을 타야 한다는 사실, 성막 하나 치는데는 힘 좋고 뜻 선량한 ..
"주님께서 만들라고 명령하신 일을 하기에 넉넉한데도, 백성들이 많은 것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명령을 내려 진영에 두루 전하게 하였다."남자든 여자든 성소를 위한 예물로 바칠 물품을 더 이상 만들지 마라."그러자 백성이 가져오기를 멈추었다. 그러나 물품은 그 모든 일을 하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였다. (탈출 36, 5-7)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온 만나를 두고 그 날의 것만을 거두어들여야 함을 배웠다. 오늘 나의 필요를 채워주신 분이 내일도 변함 없이 나를 채워주시리라 온전히 믿기 위해서는 눈 앞에 넘쳐나는 만나를 더 이상 쌓아두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하느님 말고 다른 것에 기대지 않는 '갈림 없는 마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필요하지만 그들을 이끌고 갈 모세에..
"여기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저는 이 바위에 서 있어라.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 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탈출 33,21-23) 우리 인생에서도 하느님이 지나가시는 동안 내 얼굴은 하느님 손바닥에 가려져 그 현존을 볼 수는 없더라. 하느님은 분명히 내 삶에 오셔서 당신의 발자취를 남기시지만 정작 내 바로 앞을 지나가시는 순간의 현존 만큼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느끼고 깨달아야 하더라. 그 분이 당신 손바닥을 거두시고 나면, 그제야 우리는 그분 뒷모습을 보며 눈감고 느꼈던 현존 체험을 이어가야 하리라. 남 눈의 티는 보..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빼서 내시오.'하였더니, 그들이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탈출 32,24) 사람 마음이란 것은 얼마나 약하고 간사한 것인지. 바다를 가르고 음식을 내려주고 바위에서 물도 솟게 해주었건만, 앞장서서 파라오와 대항하고 기적을 일으켜며 그들을 인도하고 잘못을 대신 빌어주며 골치 아픈 분쟁까지 하나하나 해결해 주었건만, 그 며칠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 그들은 다른 신과 다른 지도자를 찾았다. 실수였을까. 의지도 믿음도 약한 사람이기에, 그저 두렵고 떨려서 기대고 싶었을 뿐 배반은 아니었을까. 하느님도 믿어야 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느 정도 돈도 있어야 하니(도대체 어느 정도!), 성당에 다녀야 하지만 부..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등잔에 쓸 기름, 곧 올리브를 찧어서 짠 순수한 기름을 가져다가, 등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여라. (탈출 27,20) 잘 마련해야 하는 일이 있고, 잘 유지해야 하는 일이 있다. 성막을 짓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잘 준비해서 마련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증언 궤 앞에 둘 이 등불처럼 꺼지지 않고 끊임없이 타오르도록 한결 같이 유지하는 것이중요한 일도 있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잘 마련된 성전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들의 기도의 등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성경에선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위한 성막이지만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님 앞에서 그것을 보살펴야 하는 몫을 부여받은 이들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탈출기 시대에는 사제들이었지만 현..
너희는 다수를 따라 악을 저질러서는 안 되며, 재판할 때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또 힘없는 이라고 재판할 때 우대해서도 안 된다. (탈출 23,3)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듬으시기 위해, 함께 살면서 서로를 위해 지켜야 할 법을 알려 주시는 부분을 읽고 있다. 운명공동체가 서로를 위해 지켜야 하는 일종의 사법이나 사회법 같은 내용이다. 하나 마나한 이야기 같은 지침도 있고, 이런 것까지? 싶은 내용도 있지만 살다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 법이고 개인 양심이나 상황판단 기준도 워낙 천차만별이니 수많은 해석을 낳는 기준보다는 세세한 규칙을 정해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성경을 읽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적으로 다가온 구절 중 하나가 이 구절이다. ..
그 뒤 모세가 장인을 떠나보내자, 그는 제고장으로 돌아갔다. (탈출 18,27) 당시 최고 권력자???인 사위에게 아내와 자식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고 조용히 지켜보다가 모세와 백성 모두를 위해 지혜로운 충고를 한 후 조용히 떠나간다. 충실하고 성실했던 모세 곁에 있던 현명하고 어진 노인은 조용히 조언을 한 후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갔다. 탈출기의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장인 이드로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현명하고 어진 노인의 뒷모습. 건넬 줄도 알지만 마다할 줄도 알고, 잡을 줄도 알지만 놓을 줄도 아는 자. 나이는 들어가지만 성숙하진 못한 사람들. 탐욕에 몸과 영혼까지 팔아넘긴 노욕의 인간들이 연일 뉴스에 나온다. 불혹이라더니 몇 년째 여전한 나도 있다. 작정했던 결심처럼 움직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