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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7,21-29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7장

마태 7,21-29

하나 뿐인 마음 2016. 6. 23. 22:03


하루종일 복음을 곱씹었지만 묵상은 진척이 없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성당에 앉아 읽고 또 읽고 눈감고 묵상하려 했지만 도무지 아래로 내려가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실마리가 잡히는 듯 하다가도 이내 흔적도 없고 그저 텅 빈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기도가 이렇게 힘들다. 사실 마음이 힘든거지. 


마지막이다 싶어 내 방 책상에 앉아 또 성경을 펼쳤다. 촛불을 켜고 앉아 되든 안되든 삼십분은 버텨보겠다는 악다구니. 이제 성경을 덮으려는 찰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듯 하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하고 선언할 것이다."


실은 하루종일 불만이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왜 저리도 모질게 말씀하시는가? 아버지의 뜻과 주님의 이름 사이가 그렇게도 멀다면 왜 알려주시지 않는가? 설령 잘못했다 하더라도 이게 그렇게 사람을 몰아부칠 일인가? 요즘은 정말 불평 불만이 끝이 없다.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이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뭐가 잘못인지 몰라서 뚫어져라 쳐다보며 읽었다. 예언한 게 뭐 잘못인가, 마귀를 쫓아낸 게 뭐 잘못인가, 기적을 일으킨 게 뭐 잘못인가 하면서...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그들의 예언, 구마, 기적엔 가난한 이, 우는 이, 내몰린 이, 빼앗긴 이, 병든 이, 약한 이...가 없구나. 예수는 있는데 이들이 없다면 실은 예수도 없는 것. 


이제야 뒤이은 부분도 조금 이해가 간다. 슬기로운 이는 집을 튼튼하게 짓는 이가 아니라 반석 위에 짓는 이라는 말씀을 말이다. 우리의 예언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수천 수만의 마귀를 쫓아냈다 하더라도, 세상 끝까지 나아가 기적을 행했다 하더라도, 게다가 그 모든 행위를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행했다 하더라도 가난한 이, 우는 이, 내몰린 이, 빼앗긴 이, 병든 이, 약한 이...를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면. 입버릇처럼 '주님, 주님!'을 외친들 마귀보다 더한 이들을 위해 마귀를 쫓아내고,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세상을 주무르는 이들을 위해 예언을 하고 기적을 행했다면 그것이 정녕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인가. 


나의 기도를 생각한다. 나의 기도, 나의 말과 행동, 수녀원에서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좋아 보이는' 나의 행동들 안에 예수가 자리하시려면 내 행위의 목적은 나를 둘러싼 이들을 뚫고 더 나아가야 한다. 여유가 없어 성당을 자주 못오는 이들, 여기저기서 내몰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들, 빼앗기고 또 빼앗긴, 병들어 홀로 버티고 있는 이들, 몸과 마음이 약해 드러나지 않는 이들, 성당 뿐만 아니라 이 나라 , 이 세상 모든 또 다른 예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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