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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 (120)
깊이에의 강요

이번 주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19절a)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 두려움은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종종 문을 잠가 놓고 삽니다. 닫는 정도가 아니라 잠가 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다가와 문을 여는 노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도록 그렇게 문을 꽁꽁 잠글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19절b)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문을 잠갔는데도 들어오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사..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dailyreading 끝까지 사랑하셨다… 나는 어디까지를 끝이라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끝은 ‘없는데’ 나는 자꾸 끝을 생각한다, ‘있는’ 것처럼. 자꾸 끝을 생각한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처럼.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13,36) 이 장면을 묵상하면 종종 베드로의 호언장담이 마음에 걸렸었다. 목숨까지 내놓겠다 했지만 얼마 못 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배신할 베드로 때문이 아니라 수도 없이 넘어지고 실패하고 제자리로 되돌아가고야 마는 ‘나’ 때문이다. 나는 또 나에게 걸려 넘어졌다. 이 사순절 동안 또 나는 ‘마음 먹고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조금 허탈한 심정으로 복음을 다시 읽다가, 36절에서 멈췄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베드로의 호언장담도, 세 번..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요한 12,3) 가끔, 나만 엎드린 것 같을 때가 있다. 다들 앉아서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간에서 나만 바닥에 엎드려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을 해도 서럽고 쓸쓸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것이 향유 한 리트라 치의 봉헌이었음을, 단순히 바닥에 엎드린 것이 아니라 그분 발에 향유를 붓고 닦기 위한 자세였음을, 나만 엎드린 것이 아님을(예수님께서도 곧 나를 위해 바닥에 엎드리실 것이요(내 발을 씻기시기 위해서 요한 13장), 내가 기꺼이 엎드려 그 일을 했을 때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리라..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요한 8,41) #dailyreading 공허한 말이다 싶었다. 거짓도 아니요, 그렇다고 참도 아닌 이 말은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이 말을 한 사람들은 '당신(예수님)을 믿는 유다인'(31절)이었다. 나의 말은, 예수님을 믿는 나의 기도는 얼마나 진짜일까. 사람들이 한 이 말의 진실 여부는 말 자체에 달려 있지 않다. 그 말을 한 사람의 마음 속 생각과 행위, 삶이 증명해야 참이 된다. 우리의 기도도 기도 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내 생각과 행위, 삶 자체가 '아멘'으로 울려 퍼져야 비로소 참이 된다. 오랜 만에 본원에 갔는데 계절이 계절이라 온 동산이 꽃들로 가득했다. 성모상 근처 바위 옆에 무더기로 피어나는 이 꽃은 조팝나무인데, 사람들이 이팝나무로 혼동하..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요한 8,7.9) #dailyreading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았던 이 장면의 남자들. 그런데 오늘은 '그래도 이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구나.' 싶었다. 적어도 부끄러운 줄 알고, 뒤늦게라도 사라질 줄 아는 사람들. 현대인의 대화는 상대를 향한 맹렬한 비난이 난무한다. 우리는 곧잘 타인의 죄를 나의 올바름으로 착각하고 떳떳하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무나, 그 누구라도 비난한다. 수치심 없는 공격성. 주님, 부끄러움을 알게 하소서. 자신을 돌아보고, 뉘늦게라도 뉘우칠 줄 알게 하소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요한 11,43-44) #dailyreading 꽁꽁 묶인 채로 어둠 속에 갇혀, 죽음에 갇혀, 동굴에 갇혀 있던 라자로. 천으로 감긴 손과 발로, 수건으로 감싸인 얼굴로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께로 걸어가는 라자로를 묵상했다. 하지만 묵상을 하다보니 자꾸만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뒤돌아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라자로의 뒤에서, 나를 부르시는 예수님께로 가기 위해 무덤을 나가고 싶지만 감긴 손과 발이 불편하고 감싸인 얼굴이 어색해 그만 멈추고 싶어하는 내가 있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싶고 멈추어도 괜찮다 싶어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도, 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일어서고 싶어..

우리는 모두 '라자로'입니다. 라자로를 벗으로 삼으시고 사랑했던 예수님(3절.5절.11절.36절)께서는 우리도 친구라 부르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하느님이 도와주시는 자’라는 뜻의 이름의 라자로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지요. 라자로를 살리듯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살리고 계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라자로가 죽었다는 전갈을 들으시고도 왜 한걸음에 달려가 치유해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비록 라자로가 죽어 무덤에 묻혔다고 하더라도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라자로를 살리기 위해서 서둘러 가시지 않고 왜 이틀이나 더 지체하셨을까요? 이번 주는 지난 주 태생소경 복음보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유다인들은 넷째 날이 되면 영혼은 멀리 떠나가고 본격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