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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 (118)
깊이에의 강요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6-17) 오늘 묵상 시간에는 ‘높지 않다’라는 말에 머물렀다, 높지 않다 해서 우리를 낮게 보시지도 않는 분과 함께. 발을 씻어주시는 주인과 살면서도 종들끼리 서로 높낮이를 따지다가 불행에 빠지는 게 인간들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어쩌면 나조차도 ‘남이 알아주는 높은 자리’에 묶여서 살아간다. 높지 않으니 낮다고 여기며, 높아지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는 것처럼. 요즘은 라일락과 불두화, 서양산사나무 사이에 주차를 한다. 향이 거의 없는 불두화도 향도 크기도 작은 서양산사도 향이 짙은 라일락도 나란히 서서 꿋꿋이 제 삶을 산다. 바람 잘 날 없는 본당에서 투닥거리다가 수녀원..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요한 6,68) #dailyreading 이렇게 무겁고 아픈 말이었나 싶은 요즘. 요며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냐시오와 연결된다. 그래, 질문이 아니라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떠나겠냐는 스승의 질문에 대답한 베드로의 이 말의 무게를 짐작해 본다. 스승을 안심시키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다그치는 말이었을지도... 아프지만 나도 나의 형제 이냐시오도 종내 이 기도를 바쳐야 하겠지, 청원이 아니라 서원으로. 울지 않고 웃으며 기도할 수 있기를. 형제여, 그대가 이 기도를 바칠 때 나도 기도할 수 있기를, 내가 이 기도를 바칠 때 부디 나와 함께 기도해 주길...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3,14-15) 예수님은 당신이 가실 길이 ‘누구의 무엇’을 위한 길인지 분명히 아셨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당신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기에 더 힘을 내어 끝까지 걸어가실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언제까지 기억하며 살 수 있을까, 나의 길 역시 나의 구원으로만 향해 있지 않음을. 어제는 엠마오처럼 길을 나섰다. 벼르고 벼른 길이기도 했지만 내 길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곳을 향해 가는 길에서도 물었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답도 없는 것 같고 잘 알지도 못하겠다 싶은 이 길. 예수님 앞에 나 자신만 서면..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요한 20,27) #dailyreading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내게 너무나 큰 힘이자 위로였다. 하지만 살다보니 상처가 남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상처가 남아 있는 채로의 부활보다 더 위대한 것은, 상처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일이 아닐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를 혼자 간직하며 사는 사람도 많고, 끊임 없이 상처를 주위에 전시하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헤집으며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세상...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려움에 떨며 덧나도록 상처를 ..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 13,14-15) 나만 해야하는 일도 아니고 너만 해서도 안 되는 일임을 마음에 새긴다. 서로가 애써야 하고,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 우리가 서로 해야하는 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이 말씀이 이루어져도 끝까지 나를 사랑하실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기. 끊이 없이 그분께 돌아가기만 한다면... 이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우리는 영원히 그분 품에 온전히 안길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를 기억하자. 아들이 알아보기도 전에 먼저 알아보신 아버지가 달려와 아들을 품었던 그때, 아들은 자신의 죄보다 ‘죄를 지었어도 아버지께 가야함’을 더 생각했다. 내가 그분을 모른척하는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내가 그분 품에 안기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야겠다, 그분 품에..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요한 12,7)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는 여인.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은 최후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루카 10,29). 십자가 곁에는 서 있었던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요한 19,25). 그분 발치까지 이토록 가까이 다가간 이들이 또 있었나. 십자가 아래까지 용기 있게 다가서고, 고개를 숙이고 그분 발치까지 자신을 낮춘 여인들을 생각하며 성주간 월요일을 보냈다.
친구들, 한 주간 동안 잘 지냈나요?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면서 우리를 위해 고통 받으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은 사순 제5주일이에요. 친구들은 예수님을 뵙고 싶었던 적이 있지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부탁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 필립보에게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부탁했고,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가서 전했어요. 그러자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좀 기니까, 귀를 기울여서 잘 들어보세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