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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 (125)
깊이에의 강요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 14,1) 말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 말하는 자가 갖추어야 하는 신뢰를 생각한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고, 인간적 됨됨이가 그 사람의 말을 완성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요한 6,45) 물이 아래로 흐르듯, 나뭇가지가 바람의 방향대로 흔들리듯, 진실로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십자가로 나아간다. 자연스러운 일. 마땅하고 옳은 일.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요한 6,21) 어쩌면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것보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는 것이 더,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요한 6,5) 너희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빠지고 우리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너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냐는, 당신은 모른 척 우리만 해결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함께 해결하자고 하신다. 그래서 너희가 아니라 우리.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요한 1,48) 가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용히 혼자 기도하기 위해 주로 찾았던 곳이 바로 무화과나무 그늘. 삶이 고달파 겉으로 드러난 시큰둥한 표정 너머의 내면의 기도 지향을 알고 위로하신다. "내가 보았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19절a) 마치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처럼 나도 수시로 문을 잠가 놓고 산다. 닫는 정도가 아니라 잠가 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다가와 문을 여는 노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도록 그렇게 문을 잠글 때가 있다. 그 날, 제자들도 그랬나 보다. 두려움에 떨며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잠가 놓았는데 예수님이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19절b)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다. 문을 잠갔는데도 오셨다. 그 날 예수님이 어떻게 들어오실 수 있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은 부질 없겠지만, 빗장까지 걸어놓은 내 안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4)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청하신다는 것이리라. 마치 예수님이 기도하시듯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과 같은 지향, 같은 마음, 같은 곳을 보는 눈이 되어야 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