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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 (118)
깊이에의 강요
열매와 꽃은 가지 끝에 달립니다. 그렇다면 크고 싱싱한 열매를 맺는 것, 예쁜 꽃을 피우는 것은 나무일까요, 가지일까요? 좀 바꾸어 다시 질문을 해본다면, 내가 맺는 열매나 내가 피워낸 꽃은 나만의 것일까요? <p style="text-align: justify;" data-ke..
✙ 부활 제4주일 요한 10,11-18 며칠 전 주차를 하다가 작은 새를 잡아먹고 있는 까마귀를 보았습니다. 볼 일을 본 후 다시 차에 올랐을 땐 까마귀 몸집의 반도 안 되는 작은 새들이 쉴 새 없이 까마귀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별다른 반격 자세를 취하지 못한 채 수세에 몰리고 있었지요. 조그맣다 보니 그저 근처를 끊임없이 맴돌며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는 것 말고는 달리 뭔가를 할 수 없었지만, 지칠 법도 한데 세 마리의 작은 새들은 좀처럼 그 고된 몸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슬쩍 슬쩍 피해가며 몸을 사리는 까마귀와 계속 맴돌며 소리를 치고 번갈아 가까이 다가가는 작은 새들... 제법 긴 시간이 흘렀으니 지칠 법도 한데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작은 새들이 너무나 고단해 보였습니다. 죽고 죽이는 관..
사도 요한은 '사랑받은 제자'로 유명하신 분이시다. 최후 만찬 때 예수님 어깨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있을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게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라고 할만큼 공격적이고 다혈질인 모습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의 빈 무덤을 확인하는 첫번 째의 자리를 내어놓았던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라는 요한 복음의 한 장면이 늘 먼저, 나란히 떠오른다. 그가 예수의 사랑 받는 제자일 수 있었던 것은 예수 옆에 기대어 앉았기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에서도 그 옆을 지켰기 때문이다. 다른 제자들 모두 순교로 신앙을 증거할 때에도..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오늘 복음을 읽다 문득 이 말씀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사랑. 어디 목숨을 내놓는 일이 일생에 단 한 번만 생기겠습니까. 당신을 믿고 당신처럼 살고자 하는 제게 있어 친구 또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일컫는 말이겠습니까. 일상에서 수시로 맞이하게 되는 자아의 죽음의 순간. 상대를 안심시키는 따뜻한 눈빛. 평화를 부르는 침묵... 당신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 성당은 조명이 참 잘 설치되어 있는 편인데, 성체조배 시간에는 성광을 비추기 위해 adoration 조명을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 이렇게 성광 속 성체를 비추는 건 바로 옆에 놓여진 두 개의 초가 아니라 실은 높은 천정 양쪽에 설치된 조명이란 말이지요. 성광을 환히 비추기 위해서는 가까이에서 스스로 빛나는 촛불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위를 밝히는 촛불은 없는 것 보다야 낫지만, 대상을 비추되 멀리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조명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세상사도 이런 관계가 비일비재합니다. 스스로 빛나 자신을 밝히는 빛으로 주위를 밝히는 촛불 같은 삶이 있는 반면 멀리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오로지 대상만을 비추는 조명 같은 삶도 있지요. 이번 주 복음에서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
예수님께서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처음으로 일으키십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몇째 날에 사람을 지으셨는지 생각나십니까? 창조가 무르익은 여섯째 날 우리 사람을 만드셨지요. 하루하루 창조를 거듭하여 여섯 째날 사람을 지으셨듯이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물독 하나하나씩 여섯개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창조하시려고 합니다. 이 여섯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창조의 수, 일곱에 임박한 숫자입니다. 완전한 창조의 직전. 천지창조 때는 우리의 모습을 지으셨다면, 첫 기적 때는 우리의 내면을 지으십니다. 물을 술로... 물에서 더 나은 물로 바꾸신 게 아닙니다. 전혀 다른 존재,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에 의해 완전히 새로남. 물독에 담긴 물이 변화되듯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