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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9,41-44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dailyreading 본문
오늘은 도성을 보고 울고 계시는 예수님을 계속 생각한다. 무너지는 도성과 울부짖는 사람들을 미리 보시고, 사람들이 울부짖기 전부터 마음이 부서졌던 예수님의 마음. 나의 지난 시간에는 울 줄도 모르고, 울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며칠 전 본원에 갔을 때 수녀원 복도에서 한 수녀님을 만났는데, 반갑다고 팔짱도 끼시고 인사하면서 손도 잡으셔서 그 상태로 얘기를 나누며 긴 복도를 다 걸어갔다. 근데 팔짱을 낄 때 반대편을 끼시고 그러다보니 손도 어긋나게 잡으셔서 나는 거의 옆으로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 길을 걸었는데,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전해져 오는 수녀님의 따뜻한 마음과 반가움으로 불편함을 견디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애써 눈을 맞추며 주고 받은 눈빛에선 못다한 말과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과 위로도 볼 수 있었다, 굳이 말하지 못했어도. 그리고 요 며칠 그때의 기분이 자꾸 떠오른다.
불편함에 신경을 더 썼다면 나는 수녀님과 그 반가운 기분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지 못했을 것이고 서로 위로가 되는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을 테지. 잡은 손을 놓고 팔짱을 풀고 더 편하게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맞잡은 손과 주고 받은 온기의 기억은 너무 짧아 금방 잊혔겠지.
나는 요즘 부서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수들이 나를 에워싸고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 와르르 무너졌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기분. 살다보면 어쩌다 이런 날이 오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나 자신을 탓하는 게 가장 쉽고, 나를 할퀴는 것이 가장 편하고 가장 해로운 법. 좀더 굳게 마음 먹고 나를 도닥이기 위해, 나는 십자가 위의 예수를 바라본다. 나보다 먼저 울고 계시는 예수님과 홀로 시간을 보낸다.
의미 없이 부서질 리도 없고, 절대 부서지지 말아야 하는 것도 없으리라.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44절)를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쳤기에, 섣부르고 허술하게 쌓아올린 도성이 무너지는 건 평화를 깨기 위함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기 위함일 테다.
울고 계시는 예수님과 더 오래 머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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