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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 (197)
깊이에의 강요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48) 한곳에서 함께 살아도 좀 더 애쓰며 마음과 시간을 내놓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게 재능일 때도 있지만 관심이나 염려, 배려나 예의이기도 하다. 자신이 많이 받았음을 알기에 넉넉히 내놓는 사람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행복한 사람(43절)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으로 ‘많음’을 판단할 수는 없는 일. 누구는 몇 년에 걸쳐 꽃 한송이 우아하게 피워내고, 누구는 백일이나 꽃을 피워 백일홍이라 불리고, 누구는 민꽃식물로 한생을 산다. 하느님 보시기에 ‘많음’은 우리 눈에 언뜻 보이는 ‘많음’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 하느님이 주신 삶을 살아가자. 그게 행복의 길이다. 남의 삶 말고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루카 11,2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신 중에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목소리를 높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일러주셨다. 눈 앞에 행복을 두고도 다른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 말고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알려주신 것이다. 너는 지금 내 말을 듣고 있으니 너는 지금 행복 앞에 있다... 우린 가끔 행복 앞에서 행복을 찾아 헤맨다. 남 행복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나의 행복 앞으로 가면 될 일인데 말이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루카 10,41-42)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마리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 나누기를 하던 수녀님이 생각난다. 나보다 활동적인 수녀님이라 당연히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만 생각하고 그 에너지를 하느님 앞에 고스란히 내려 놓고 본성까지 견디고 참아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해 본 나는 얼마나 오만했나. 사실 읽고 싶은 책 생각에, 고단하다는 핑계로, 내일을 위해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내 소일거리가 주는 기쁨 때문에 기도를 끝내는 시간을 자주 앞당기고 서둘러 마무리 ..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루카 9,54-56) 돌아서서 제자들과 맞서신 예수님을, 그 표정을 상상해 본다. 기도 중이라 해도 상상이 이루어진 순간은 이내 피하고 싶은 순간이 된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는 제자들의 들뜬 분개보다 예수님의 근엄한 꾸짖음이 내겐 더 두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제자들과 헤어지지 않으시고 다른 마을로 둘러가는 길에 동행하셨고 예루살렘에도 함께 가셨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정의랍시고, 누군가를, 누군가의 행동을 용납하기 싫고 응징하고 싶은 내 욕망을 주님의 뜻이라 포장하기는 얼마나 쉬운..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루카 9,4) #dailyreading 입회를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말에만 눈길이 갔었다. 지닐 수 없는 것이 주는 아쉬움이 컸던 걸까. 지팡이, 여행 보따리, 빵, 돈, 여벌 옷도 가져가지 말라는 말이, 어쩌면 그 말만이 힘들어 보였다. 가질 수 없는 것… 입회 후엔 가지지 않아도 떠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말씀에 동의하며 사는 것에 더 마음 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뒤따라 오는 말씀,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라는 말씀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떠날 때까지 머물라는 말씀이 ‘지금’은 떠나지 말라, ‘아직’은 떠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리니 지금 여기에 머물기 위해 나는 떠날 수가 없다… 하느님 뜻을 지금, 여..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나를 버리지 못하면 내 몸이 버거워 십자가를 지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한동안 바오로 사도의 자취를 따랐던 때문인지, 자신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던 바오로 사도의 삶과 나의 삶을 생각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신’에 대한 확신을 모조리 내려 놓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만을 가져야 했던 바오로. 지금 나는 십자가를 지느라 숨이 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노력했던 나’를 버리지 못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니 정작 ‘나의 십자가’를 질 힘은 모두 소진된 건 아닐까. 옳은 것을 하자 싶었지..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카 8,15) #dailyreading 비유를 풀어주시면서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지만 막상 설명에서는 씨를 ‘사람’이라 표현하신다. 예수님의 풀이를 되풀이해 읽으니 이러저러한 사람은 뿌려지는 씨이고, 사람의 태도나 내적 자세는 밭의 상태처럼 들린다. 길은 악마에게 마음을 빼앗겨 믿지 못하는, 바위는 뿌리 내리지 못해 시련의 때에 떨어져 나가는, 가시덤불은 걱정과 쾌락에 사로잡혀 열매 맺지 못하는, 좋은 땅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는…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문장의 순서를 조금만 달리 해서 묵상..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루카6,45) 내’맘’대로 실컷 내놓고 나서 속마음은 아니라고,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마음을 드러내는 데는 한계도 있지만 많은 경우엔 고스란히 드러난다. 드러난 것, 그것은 내것이다. 내 안에 있던, 어쩌면 지금도 내 안에 있는 것. 그러니 없는 척 할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정리하고 치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