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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4,25-33 그분 앞에 앉아서... (다해 연중 제23주일 레지오 훈화) 본문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7절). 예수님은 '나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의 십자가... 살다보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행복한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지만 부당하다 생각되고 나만 겪는다 싶으면 감당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즐겁고 기쁜 일도, 버겁고 서러운 일도 모두 ‘내’ 삶이기에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짊어질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도 비로소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첫자리에 두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며 내 십자가를 예수님 바로 다음에 두어서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 것도 제자의 삶이요, 내 삶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며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하고 덧붙이십니다. 이번 주는 '앉아서'라는 단어에 대해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탑을 세우기 전 공사 경비를 '앉아서(28절)' 계산해 봐야 하고 이만 명을 거느리고 싸움을 걸어오는 적에게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앉아서(31절)' 헤아려 봐야 하듯,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넘어서야 할 일들을 만났을 때에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앉아서' 곰곰이 가늠해 보고 헤아려 보는 일입니다. 매일 감실 앞에서 '앉아서' 고요 속에 머물며 들려주시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들을 응시해야 하듯 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종종 앉으셨지만 마르 3,31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제자들도 그분 주위에 모여앉아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앉아 있는 자세는 또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스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작이기도 합니다. 미사 독서 때 신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강론 후에, 영성체 후에 앉아 잠시 침묵 중에 묵상하는 시간은 들은 말씀을,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지요. 우리는 예수님 발치에 앉았던 마리아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내 안에 새기기 위한 ‘앉음’.
신앙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 앞에 앉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첫자리에 두는 일일 테고 내 십자가를 제대로 짊어지는 법을 터득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분 앞에 앉아야 무엇이 내 십자가인지 알 수 있고, 그분 앞에 머물러야 내 십자가와 내 것이 아닌 십자가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은 예수님 앞에 자주 앉아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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