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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26-38 성모님의 Amen(나해 대림 제4주일) 본문
곰곰이 생각하였다.(28절)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복음을 묵상하다가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사의 말 말고, 성모님의 대답(반응)만 따로 떼어서 읽고 또 읽어봤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이런 태도로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꼭 두렵고 떨리는 중대한 선택이 아니더라도, 내키지 않아 한마디 말도 하고 싶지 않다거나 한사코 미루고만 싶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경우에 난,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 지금도 이후도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지, 나아가 사람들의 반응까지 염려하다가 그 일이 이루어져야하는 진짜 이유는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성모님은 천사의 갑작스런 말을 듣고도 당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밝히지도 않으셨고 사실이 밝혀졌을 때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하지 않으셨고 소문으로 인해 겪을 온갖 수모와 모욕을 먼저 떠올리지도 않으셨다. 수많은 핑계가 스쳐갔을지는 모를 일이나 그것들을 붙잡지 않으시고 천사의 말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셨다. 당신의 생각이나 입장에 앞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나야 하는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일(하느님께서 이루실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오직 '남자를 알지 못했음'일 뿐, 당신의 평판이나 겪게 될 고초는 장애가 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성모님은 당신이 겪을 어려움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셨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은총을 가득히 입으셨음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도,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사실도,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셨다. 그분이 고요히 마음 안에 품어 안은 것은 두려움과 수모, 모욕과 고통만이 아니라 당신이 받은 은총과 영광, 총애와 기쁨까지 포함된다. 나는 이럴 수 있을까... 두려움과 기쁨으로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하게 안으로 품는 일. 섣불리 뚜껑을 열지 않고 뜸을 들여서 속속들이 잘 익도록 기다릴 줄 아는 일. 하지만 그저 입을 다문 채 기다리기만 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거는 일. 이것이 성모님의 자세였다.
마지막으로 이 두 자세를 견지하여 나온 마지막 대답,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를 천천히 읽고 또 읽었다. 성모님의 이 Amen으로 세상 구원을 향한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가 기도가 고요히 끝을 맺는다. 이처럼 나의 모든 기도도 성모님의 Amen으로 끝맺을 수 있기를... 부디 Amen.
...... 어제 이 묵상을 하고 오늘 대림 특강을 들었는데, 강의에서 amen 얘기가 또 나왔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묵상이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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