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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4,1.7-14 예수는 왜 나의 무분별한 사랑을 방해하는가 본문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얼마나 쓰리고 아린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는 이 쓰리고 아린 사랑의 길로 우리를 초대한다. 물론 초대를 받고 나는 또 얼마나 제자리를 맴돌며 서성였던가.
이곳에 와서는 아직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교리교사들에겐 간식을 가끔 해주곤 했었다. 그리고 엘에이에 있는 동안 가끔 함께 렉시오 디비나 모임을 하던 청년들에게 밥을 해줬었다. 따뜻한 밥 한끼 해 먹이고 싶던 마음. 아름답고 분주하고 넓고 외로운 도시에서 도시처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솜씨가 있든 없든 엄마처럼 따뜻한 한국인 밥상을 그렇게도 차려주고 싶었다. 엄마처럼 밑반찬을 만들어서 제발 혼자서도 잘 챙겨 먹으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오늘 예수는 왜 나의 사랑을 방해하는가. 내 친구나 형제처럼 편하고 마음 가는 이들에게 왜 밥 한끼 먹으라 초대하지 못하게 하는가.
예수의 말씀은 내 무분별한 사랑을 드러낸다. 내가 정성껏 차린 식탁 자리. 그 식탁 둘레에 앉지 못한 이들. 땀 흘려가면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고 된장 찌개를 끓이던 그때에도 나의 초대가 늘 비켜가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내 무분별한 사랑은 어떤 이는 초대하고 어떤 이는 초대하지 않는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12-14절)
높은 자리에서 빛나는 이가 아니라 공허하고 외롭고 가진 것 없는 이 가난한 이를,
삶에 지쳐 몸도 마음도 마비되어 자유를 잃은 이 장애인을,
당연히 가야할 자신의 길마저 흔들리기만 하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이 다리 저는 이를,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고함에 눌려 응원도 칭찬도 격려도 자신의 목소리 조차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이 눈먼 이를,
그리고 이같은 처지에 있는 너를
초대하여라.
요즘도 내 식탁에 초대받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성당에 앉아 복음을 묵상하면서 눈을 감고 있으려니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맺고 끊는 것이 선명한 편이었던 나는 점점 더 고약해져서 기분 내키는 대로 고집을 피우면서 맺고 끊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었구나. 함께 살아가려면 지켜야할 선이 분명히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선은 구분이 아니라 절단의 선, 울타리가 아니라 벽이었구나. 되돌아오지 않는 쓰라린 사랑은 내가 주었었구나.
식탁 둘레가 허물어질 때가 바로 부활이요, 저 너머에서 누릴 행복을 이녁에서 누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누릴 보답이리라.
내가 나에게 실망해서 나 자신에게 조금의 온기도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발견한 사진이다. 한겨울, 친구들이 있던 광화문을 차마 떠나지 못해 찬바닥에서 누운 채 묵주를 돌리다 잠든 사제의 손에 누군가가 핫팩을 받쳐 둔 모습. 내 마음의 온기가 이 핫팩 하나보다 좁고 못하다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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