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렌의 노래
- 박태범 라자로 신부
-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 그녀, 가로지르다
-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 사랑이 깊어가는 저녁에
-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 테씨's Journey Home
- 성서 백주간
- El Peregrino Gregorio
- KEEP CALM AND CARRY ON
- HappyAllyson.Com 해피앨리슨 닷컴
- words can hurt you
- 삶과 신앙 이야기.
- Another Angle
- The Lectionary Comic
- 文과 字의 집
- 피앗방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홍's 도서 리뷰 : 도서관을 통째로. : 네이버 블로…
- 행간을 노닐다
- 글쓰는 도넛
- 명작의 재구성
-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 자유인의 서재
- 창비주간논평
- forest of book
- 읽Go 듣Go 달린다
- 소설리스트를 위한 댓글
-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 리드미
- 여우비가 내리는 숲
- 인물과사상 공식블로그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
-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2.…
- YES
- Down to earth angel
- BeGray: Radical, Practical, an…
- newspeppermint
- 켈리의 Listening & Pronunciation …
- Frank's Blog
- 클라라
- Charles Seo | 찰스의 영어연구소 아카이브
- 영어 너 도대체 모니?
- 햇살가득
- 수능영어공부
- 라쿤잉글리시 RaccoonEnglish
- Daily ESL
-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 교회 음악 알아가기
- 고대그리스어(헬라어)학습
목록vita contemplativa (339)
깊이에의 강요
볼리비아 교구 산타크루즈 성당 십자가. 태권파더 카톡 프로필에서 이 사진을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보내달라고 졸랐더니 몇장 선물이 더 왔다. 이 소박한 십자가 사진을 보고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 받는 것 같았다. 우리들에게 성주간이 늘 그렇듯,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는 늘 바쁘고 고단해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가로막대 하나, 세로막대 하나면 십자가인데 뭘 그리고 세우고, 드러내고, 꾸미느라 아등바등인지... 바쁜 일들 모두 끝내놓고 누워 이 검박한 십자가를 떠올렸다. 성경엔 몇번 나오지도 않는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당신의 흔적과 얼굴을 보여주신다. 사실 이들이 가장 먼저 예수님을 찾았고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일..
요약해 보자면, 단지 낙태를 반대한다는 것이 네가 생명을 수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먹이지도 교육하지도 집을 주지도 않으면서 낳는 것만 원한다면 도덕성 엄청 부족한 거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넌 그런 일을 위해 세금을 안내니까. 그건 생명 수호가 아니라 출생 수호야. 우린 생명 수호에 대해 더 폭넓은 대화가 필요해. 어떤 경우에라도 생명을 훼손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보태어, 어찌 나고 죽는 것만 생명의 일인가. 살아가는 것 그 자체도 생명의 일이다. 아이도 아이의 부모, 혹은 양육자도 제대로 먹고 사는 것, 사람들과 관계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도 생명의 일. 낳는 것만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 말하는 사람들과 입학 만을 위해 ..
살다보니, 리본을 묶으면 언제나 거꾸로였다. 고리 부분이 위로 가고 끈이 아래로 늘어지면 예쁠텐데 묶고 나면 늘 반대였다. 그러다 오늘 운동화 끈을 묶으며 기억해냈다, 내가 리본 묶는 방법을 운동화로 연습했다는 걸. 끈으로 묶는 운동화를 신는다는 건,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가 된다는 것. 처음으로 갖는 끈이 달린 운동화를, 혼자 묶었다 풀었다 참 열심히도 연습했었다. 어릴 적 끈 달린 운동화를 스스로 묶으며 행복했던 ‘어린 나’를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난 혼자서, 스스로 연습한 게 참 많구나. 젓가락 쥐는 법도 곁눈질로 봐둔 걸 혼자 연습했고(얼른 보면 멀정한데 자세히 보면 손가락이 다름), 자전거도 혼자서 수없이 넘어지면서 배웠다. 피아노도, 뜨개질도 그럭저럭 혼자 배우고 익혔다. 스스로 어린이가..
세례자 요한은 물론 아주 훌륭한 분이지만 사람에게 가차 없이 독화살 같은 말을 쏘아대기도 했고 예수와 버금가는 세력을(당대엔 더 큰 무리의 제자를 두었음) 오랫동안 유지할 만큼 권력형 사람이었다. 또한 예수 출현 이후 스스로 물러나 광야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끝까지 가장 큰 ‘목소리’ 역할을 한 분이다. 초야에 묻혀 사라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영향력을 미치는 행동을 어디서든 하는 유형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 자체가 요한의 사명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나쳐보일 정도로 금욕적 삶을 살아 메시지가 무척 강하고 날카로웠다. 강한 지도력을 가졌으며 곧고 옳은 칼 같은 성격, 세상 권력엔 굽히지 않지만 자신보다 높은(이 표현이 좀 부족한데...) 분 앞에선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낮추며 받들 줄도 알았던 인물...
무리요가 그린 성 안드레아의 순교. 초대교회로부터 첫 번째로 불림을 받은 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받은 안드레아이지만 한 번도 온전히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늘 베드로의 동생으로 불렸고, 안드레아 없는 베드로는 있어도 베드로 없는 안드레아는 복음에 등장하지 않는다. 늘 앞자리를 타인에게 내어주며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안드레아. 그가 살아생전 자신의 '가려진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혹은 서운하게 여겼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복음서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을 붙들어 세운다. 타인에게 가장 좋은 길을 터주고는 언제나 조용히 사라지는 삶. 열심히 노력한 만큼 드러나고 싶은 내 안타까운 욕구 때문일까. 나는 그가 늘 가련하다. 안드레아는 그리스 파드라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풍자 그림에 대해 불편한 의견이든 응원하는 의견이든 거기까진 각자의 판단이라 여긴다. 난 그저 역겹기만 하고 무엇을 풍자하는 지도 잘 모르겠지만 미학에 대한 내 무지려니 한다. 하지만 각 글에 대한 댓글을 보고 그것이 정작 불러온 것이 무엇인가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나는 예술이든 트윗 몇 줄이든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몇 마디 말이든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반응 역시 내 표현의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댓글에 쏟아지는 제한 없는 험한 욕설, 비판 없는 원색적 비난을 보니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것들이 길바닥에 나부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지나치게 고루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욕 한 번 하고 쓱 다음으로 넘어갈 만한 문제인가 싶다. 무언가를 길바닥 아무데나 두 사람은 처음부터 그걸 주워 담을 생각이..
셋이서 빙수를 먹는데, 1 흘리지 않기 위해 섞지도 않고 컵에 조금씩 덜어서 먹는다. 심지어 연유도ㅠ 2 흘리는 것에 개의치 않고 푹푹 섞어서 신나게 먹는다. 물론 많이 흘림 3 자기 앞에만 조금씩 연유를 부어가며 흘리지 않게 조심하며 잘 섞어 먹는다. 이 중 1)골고루 먹다가 녹은 빙수까지 끝까지 잘 먹는다, 배불러도. 2)어느 정도 먹은 후 숟가락을 놓는다. 물론 먹고 싶지 않은 과일이나 떡은 살살 밀어가며 먹었다. 어제 빙수 먹으며 모처럼 서로 마음이 달라도 마음이 맞구나 싶었던 건 서로 스타일이 다른 1,2,3이 모였는데 1)로 끝났기 때문. 2)가 있으면 마무리가 불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