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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성 안드레아의 순교 본문
무리요가 그린 성 안드레아의 순교.
초대교회로부터 첫 번째로 불림을 받은 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받은 안드레아이지만 한 번도 온전히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늘 베드로의 동생으로 불렸고, 안드레아 없는 베드로는 있어도 베드로 없는 안드레아는 복음에 등장하지 않는다.
늘 앞자리를 타인에게 내어주며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안드레아. 그가 살아생전 자신의 '가려진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혹은 서운하게 여겼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복음서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을 붙들어 세운다. 타인에게 가장 좋은 길을 터주고는 언제나 조용히 사라지는 삶. 열심히 노력한 만큼 드러나고 싶은 내 안타까운 욕구 때문일까. 나는 그가 늘 가련하다.
안드레아는 그리스 파드라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는데 예수님과 똑같은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다며 X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한다. 왼쪽에 눈물을 닦는 소년은 안드레아에게 음식을 내어줬던 소년이라고 한다. 소년은 평생 가려진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다가 십자가에 달린 안드레아의 고단한 삶을 알았을까. 영광의 자리는 늘 남에게 내어주고 뒤에서만 조용히 예수를 따랐던 안드레아는 문득문득 지쳐 있는 내게, 진짜 이유를 묵묵히 알려 주며 깨닫게 한다.
하느님의 처분에 따를 것,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느님이 바라시는 만큼
저에게 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 어둠이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된다면,
아니, 누구에게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들판에 핀 하느님의 꽃이 되어 더없이 행복합니다.
(마더 데레사가 노이너 신부에게 보낸 편지,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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