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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난 솔직히 요즘 페미니즘에 관한 논란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말 잘 모르겠다. 이것이 여혐이냐 아니냐 정의내리는 기준도 여자인 내 눈에도 애매하고 어렵다. 물론 '여자'이기 때문에 억울했던 이야기나, '여자'가 아니었다면 절대 받지 않았을 대접이나 공격에 관한 이야기는 무한정 풀어놓을 순 있다. 하지만 이 경험들을 풀어놓는 것만으로는 인간의 무게를 나란히 두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와서 ... 라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에서 고단하게 살아왔다. 수녀로서의 삶은 더 높은 이상을 지향했던 만큼 추락의 속도는 빨랐고 절벽 아래는 아득하게 깊었다. 그래, 수시로 나락을 절감했다. 피부로 느끼는 이 불평등에 대한 감정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인가 싶다가..
부모와의 매듭을 풀고 싶은데 어렵다는 문자를 받았다. 살아가면서 풀어야할 매듭 서너 개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이 얼마나 꼬이고 엉킨 매듭을 풀길 원했으면, '매듭을 푸는 성모님'(Mary Undoer of Knots)께 드리는 기도가 생겼을까. ( http://singthelord.tistory.com/1554 ) 자매님께 답할 문자 내용을 생각하다보니 나의 매듭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매듭은 풀고나니 자연스럽게 잘 이어져 있기도 했지만 또 어떤 매듭은 애초에 엉킨 매듭이 아니라 끊어진 줄을 잇다가 꼬여버린 매듭이기도 했다. 풀고 난 매듭은 이어져 있을 수도 있고, 아예 연결되지 않도록 끊어지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나 역시 그랬다.) 매듭을 풀고 나면 보기 좋고..
영화든 책이든 보는 사람이 느끼고 말하는 것이 평가가 된다. 감독이나 저자의 의도가 아무리 아니라 해도 보는 이들이 그리 보고 느꼈다면 표현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 하지만 개인은 자신만의 사고와 경험이라는 렌즈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언젠가 프로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어쨌든 자기 말고는 다 얼려버리는 거잖아요. 아니러니해요."라고 말했다.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점 아주 많은 분인데, 가끔 느끼던 투명한 유리벽을 그때 선명히 보았던 거 같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자신이 주위를 몽땅 얼려버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프로즌이 '여자'가 주위를 몽땅 '얼려버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생각..
사도직 단체 모임이 끝난 성당은 에어컨의 한기가 남아 있어 시원하다. 정작 기도 모임엔 나가지 않고 모두가 돌아간 후 텅 비었을 시간에 성당에 들러 어둠 속에 잠시 머물다 나왔다. 생각도 많고 머리도 복잡하고 날도 더우니 기도라기 보다는 그저 '잠시 멈춤'의 시간. 성당 문을 닫고 수녀원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는데 질문이 튀어 나왔다. "기도의 끝은 무엇일까?" 진실된 기도의 끝은 무엇일까. 진짜 기도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주차장 통로에 주차를 해놓고도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자매님. 미사 후엔 당연히 다른 곳으로 옮겨 제대로 주차를 해야하는 데도 기도가 더 중요해서 계속 성당에 머무르며 기도를 하셨단다. 차를 빼달라고 여차저차 설명하시는 분에게 그 자매님은 말했단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기도..
엄마와 대학교 1학년 때 헤어졌고, 스물 일곱에 수녀원에 들어갔다. 입회하고도 십여 년이 흐른 후 수녀원 정원에 핀 커다란 작약을 보며 엄마가 작약을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 예쁘다."하고 입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엄마가 떠올랐고, 그 순간 엄마가 어떤 '여자'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억엔 남아 있지 않지만 작약이라는 말도 엄마에게서 배웠겠지. 그리고 난 하늘 나라에 가면 엄마랑 꽃길을 걷겠지. 엄마랑 꽃길을 여행했다는 트윗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났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여행 다닐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난, 성당에서 떠난 엠티와 학교에서의 두 번의 엠티를 빼고 나면 입회 전엔 거의 여행을 하지 못했다. 엄마와 어딜 여행 다닐 일도 물론 없었다. 미국에서 몇 번 파크 같은 델 다..
이게 옳다 아니 저게 옳다. 이삼일에 한 번은 일어나는 논쟁. 지켜볼 때마다 떠오르는 미션의 마지막 장면. 둘 다 원주민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까지 내놓을 결심을 하지만 가브리엘 신부는 성체를 들고 천천히 행진했고, 로드리고 신부는 총을 들고 돌진했다. 그러니까 손에 든 총만 보고 진심을 매도하지 말 것. 높이 쳐든 성체만 보고 비겁하다 쉽게 판단하지 말 것. 세상사도 그렇지.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어떻게 그리 판단할 수 있겠냐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건, 하나만 보고 속단하라는 게 아니잖아. 저 연꽃들을 보라고. 내가 본 하나의 연꽃만 가지고 수많은 연꽃을 안다고 말할 순 없잖아?
어느 날 할머니 수녀님께서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붙잡아 세우시더니 가방 하나를 들고 나오시면서 "아, 이거 보여주면 또 달라고 할 거 아니가?"하셨다. "도대체 얼마나 예쁜 가방이길래 그러세요?" 대꾸하며 봤는데 정말 예쁜 가방이었다. 실은 수녀님은 곧 은퇴가 예정되어 있는 분이라(하느님 뜻은 온전히 알 수 없지만 대충 우리들 인간 계획이 그렇다는 거다.) 조금씩 짐정리를 하고 계신데 그 가방도 이제 다른 주인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가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직 반 년 정도는 함께 더 살아야 하는데 싶어 "당장 주지 마시고 좋은 날 들고 다니시다가 돌아가실 때 유품으로 남기세요. 지금 주셔놓고 내내 뺏겼다 잔소리하실 거 아니예요? 대신 다른 수녀 주기 없기!"하고 말씀드렸다. 그랬더..
예쁜 고양이 카드를 앞에 두고 펜을 이것저것 골라보다가 결국 편한 거 하나 골라잡고 카드를 쓰긴 썼는데, 손글씨를 쓸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여전하다. 좀 더 귀여운 글씨체로 예쁘게 써볼까 잠시 마음을 먹기도 했지만 이젠 그렇게 쓰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는 몇 자 쓰지도 못한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귀염 터지는 냥이 카드를 사면 뭐하노, 정작 내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인데!'라고 했더니 친구들은 오래전부터 내 글씨를 좋아했다고 말해주고 누군가는 자랑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더니 결국 어릴 적 앉은뱅이 책상 앞으로까지 나를 데려갔다. 나도 내 글씨가 싫지 않다. 솔직히 못쓰는 글씨도 아니다. 쓴다라기 보다는 그린다에 가까운 손놀림으로 글씨를 쓰긴 하지만 나 역시 내 글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