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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어쩌다 내 이름 하나를 더 짓게 된다면, '가루'라고 짓고 싶다. 그저 한줌 정도이고 싶고, 날개 없이도 날고 싶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고 싶고, 가볍고 싶고, 흔적 없이 흩어져도 괜찮다 싶고...
내가 참 좋아하는 우리 성당 꽃꽂이. 보통 성당에서 꽃꽂는 분들은 돈, 시간 등이 상대적으로 모두 여유있는 분들이라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데그러다보니 전례에 맞기보다는 아름답고 특별함을 뽐내는 꽃꽂이가 많다. 그런데 이분들은 돈내고 배운 적이 없어 늘 부족하다 하시며 죽어라 숨어서만 봉사하신다. 여태의 성당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꽃꽂이를 매주 해주시는 분들.그야말로 꽃꽂이를 제대에 '봉헌'하신다.
지난 축일 때 선물 받았던 그랑코예를 한동안 소홀했더니 수녀원 정원 가장자리에서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부랴부랴 물을 주고 며칠 아는척 해주고 햇빛 좋은 곳에 자리를 옮겼더니 이렇게 살아!났지요. 사람을 만나든 꽃을 만나든 마음은 한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꾸 아프고 우울해지고 힘들어하는 게 꼭, 그 사람 탓만은 아닌거지 하며 마음 한 번 다시 먹어봅니다.
심은 적 없는 생명이라 잡초인 줄만 알았는데, 수녀원 정원 가장 가장자리에서 이렇게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해를 거듭할수록 가뭄이 심해져 물을 줄 때마다 미안해하면서도 잡초를 뽑곤 했다. 잡초에게까지 나눠줄 만큼 물이 넉넉지 않아 매번 잡초부터 뽑아야했는데, 가장자리에 자리잡기도 했고, 잡초 치고는 쑥쑥 자라길래 긴가민가 하던 게 몇 달.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데 서운한 마음 잔뜩 안고 꽃피워줘서 고맙다.요샌 왜이래, 고마운 대상이 많은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어머니를 요한에게, 요한을 어머니에게 맡긴 후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이들의 시선마저도 당신에게서 떼어내어 서로를 향하게 하셨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향하던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신 예수.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서로를 사랑하도록 당신은 철저히 혼자가 되셨다. 예수는 그렇게 끝까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셨다.
성체를 모시고 자리에 돌아와 앉다가 무심코 텅 비어 있는 감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만 당신이 인간을 먹이기 위해 나오시면 감실이 텅 비어 버립니다. 보이지 않는다 투덜거리던 제가, 텅빈 감실에만 눈길을 주고 우리 앞으로 다가오시는 당신에게서는 눈길을 거두었었다는 것.
뉴욕 타임즈에서 'Indian Stampede Kills at Least 27 at Religious Festival'라는 기사를 보았다. 어제 있었던 힌두교 축제에서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중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것. 죄를 씻고자 모인 행사에서 '내가 먼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마음은 더 큰 죄라는 결과를 낳았던 건 아닌가. 죄를 씻기 위해 타인을 밀치거나 제쳐둔다면, 다치게 한다면, 심지어 죽게 한다면 그 씻음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만의 열심으로 죄를 씻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 우리 대부분의 바람일 것이다. 잘못은 용서받고 싶고 떳떳하고 자유롭고 싶은데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정작 중요한 과정을 슬쩍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