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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삼위일체 대축일. Andrei Rublyov. 나는 너를, 너는 그를, 그는 나를. 혹은 나를 너에게, 너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이로써. 영원히 사랑으로 존재한다.
인물과사상 5월호에서 신기주씨가 쓴 최승호 피디 인터뷰를 읽다가 요즘 내 혼란스러웠던 고민의 갈피를 이제야 좀 잡은 거 같다. 17년차 수녀가 본당과 지역과 심지어 나라까지 옮겨 다니며 조금씩 품게 되고 조금씩 쌓아둔 마음 속 질문들. 최근 이곳에 와 이 질문이 쌓이고 쌓여 아슬아슬 흔들리고 있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며 급기야 이 질문은 무너져내리기 직전이 되었다. 성당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 그것도 자녀들을 제때에 첫영성체까지 시키려는 부모님들의 신앙이 왜 이다지도 미지근한가. 꼭 이들뿐만 아니라 요즘 내가 만나는 많은 신자들이 보여준 신앙에 대한 무심한 듯한 태도들. 신앙이건 뭐건 이렇게까지 마지못해 하듯 성당을 다니는 이유가 뭔가. 게다가 왜 이렇게 한편에서만 안타까워하며 못해줘 안달이고 못끌어줘 ..
아주 작은 화분이었을 땐, 마른잎 하나 떼내는 것도 힘이 들었었다.끊임 없이 나고 죽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제 시간을 다해 마지막을 맞이한 잎들과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도 처음엔 참 어려웠었다. 잎의 끝과 식물의 끝이 다르다는 것,잎의 끝이 제때 이루어짐이 식물의 '생'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막상 내 손으로 그걸 하나하나 떼내는 것이 내겐 그리도 쉽지 않았다.
함께 산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성탄이었습니다.글쎄요... 살면 살수록 모르겠고, 생각해 볼수록 더욱 모르겠습니다. 성탄이 다가올수록 할일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지니 수녀원을 오가는 걸음이 분주해지지요.식당에 구유가 꾸며진 걸 보고서야, 비로소 아... 내게도 성탄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잰 걸음으로 지나치던 나를 멈추게 한 성탄 구유를 보며 생각합니다. 구유가 주는 따스한 위로를 굳이 찾고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또 생각을 했지요.서로 어울리기엔 너무나 제각각인 구유.꽃은 너무 크고 구유와 그 안의 예수님, 요셉, 마리아는 너무 작고 솔방울과 나무의 크기가 비슷하고...예, 서로 어울리기엔 정말 너무나 제각각이었습니다. 꾸며서 예쁜 게 아니라 어울려서 예뻤습니다.크기도 종류도 서로 다른 것들이 ..
원죄 없이 잉태됨이 마리아의 공로가 아니듯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공로가 아니오니, 당신의 가장 좋은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Image: St. Stanislaus Kostka Parish, 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