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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휠체어로 다니다 보니 평소 평지라 부르던 길도 경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에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오르막일 땐 힘들고 내리막일 땐 편하다. 분명 내리막인데도 내가 지나는 그곳만 오르막일 수도 있고, 오른손만 열심히 움직여야 겨우 앞으로 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그래, 경사 없는 길이 얼마나 되겠어. 상대를 볼 때도 그렇겠지. 그 길을 걷고 있는, 걸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기울기.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오르막을 걷는 사람에게, 평지를 걷듯 힘내라고 말해선 안되는거지.
임보 하다가 도저히 못본 척 할 수 없어 가족이 되는 경우는 봤어도 2년 살다가 가족을 찾는다는 건 처음 봤다. 사랑은 주고 싶을 때 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필요할 때 주는 것이고, 내가 거두고 싶을 때 거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다시 사랑을 주는 것이건만. 어떤 사랑만이 아니라 모든 사랑이 말이다. 언젠가 책방에 가는 길에 만난 꽃이 생각났다. 개망초던가. 담벼락에 핀 꽃에 대한 사랑은 집으로 데려오기 보다 한철 한껏 피었다가 잘 지게 봐 주는 것이리라. 그러니 내 생애도 그분 앞에서 한철 한껏 피었다가 부디 잘 지거라.
세상엔 참 예쁜 꽃들 많아. 그동안 주위에 없어서 모르고, 지나쳐서 모르고, 바빠서 모르고, 꽃 없을 때 봐서 오해하고, 꽃잎 질 때 봐서 귀찮아하고, 가물 때 힘들어하고... 내 잣대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 사람도 그랬겠지?
가시엉겅퀴 꽃이 무거운지 살짝 기울었다.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만물을 향해 얼굴을 내민 것 같기도 하다. 그래, 곧은 게 능사는 아니다.
여름이 가까운 봄인데다 비까지 내려 그야말로 온갖 푸른 싹이 흙에서 돋았다. 감상할 틈도 없을 정도의 속도로 매일매일 잎이 돋고 꽃이 피었다. 하루하루가 아름다워 이길 저길 걸어보는 것도 요즘의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오늘 사진을 찍다가 알았다. 소박한 들꽃이 만들어준 길은 그 끝이 담으로 나 있었고, 길이었기에 그동안 매일매일 걸어 다녔던 대문으로 난 길은 서서히 보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꽃이 만든 길, 풀이 덮는 길. 산다는 것도 이런 건가. 살다보면, 의심 없이 걸어다녔던 길이 조금씩 사라지기도 하고 예쁘다 싶어 걸어갔는데 담 앞에 나를 서게도 한다. 오늘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풀이 마르고 바람에 날리는 계절이 오고, 담 앞에 서게 되었다 해도 돌아서면 되는 법.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
봄이 주는 위로는, 지지 않는 꽃이나 떨어지지 않는 잎이 아니라 ‘새로 돋음’이라는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마침표를 찍지 못해 좌절하고 있을 때, 찍지 못한 마침표는 잠시 그대로 두고 새 문장을 시작해도 괜찮다...
월요일은 무조건 쉬는 게 제일 좋지만 선교분과 수녀님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황새바위 성지 지하무덤. 대전 살 때 몇 번 가본 곳이지만 부활경당은 안가더라도 여긴 다시 가보고 싶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을 지나면 빛이 가득한 입구가 나오는 이 복도. ㅎㄱ 수녀님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굳이 지켜보고, 나 역시 굳이 다시 걸어봤다. 피곤한 오늘이지만 빛을 향해 난 길이길.
친구들 한 주간 동안 잘 지냈나요? 오늘은 제대 꽃꽂이도 좀 더 화려하고, 초도 흰색이지요. 신부님도 녹색이 아니라 흰색 제의를 입으셨네요. 무슨 날일까요?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이예요. 말이 좀 어렵지요? 한 번 따라해 볼까요? 삼위일체가 무슨 뜻일까요?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뜻이에요. 즉, 아름다운 세상과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성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 예수님의 승천 후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 이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구별되시지만, 동시에 본질로는 같은 하느님이라는 뜻이예요. 어렵지요? 비유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지만 친구들을 조금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