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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기도의 끝 본문

vita contemplativa

기도의 끝

하나 뿐인 마음 2016. 8. 25. 17:14


사도직 단체 모임이 끝난 성당은 에어컨의 한기가 남아 있어 시원하다. 정작 기도 모임엔 나가지 않고 모두가 돌아간 후 텅 비었을 시간에 성당에 들러 어둠 속에 잠시 머물다 나왔다. 생각도 많고 머리도 복잡하고 날도 더우니 기도라기 보다는 그저 '잠시 멈춤'의 시간. 성당 문을 닫고 수녀원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는데 질문이 튀어 나왔다. "기도의 끝은 무엇일까?"


진실된 기도의 끝은 무엇일까. 진짜 기도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주차장 통로에 주차를 해놓고도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자매님. 미사 후엔 당연히 다른 곳으로 옮겨 제대로 주차를 해야하는 데도 기도가 더 중요해서 계속 성당에 머무르며 기도를 하셨단다. 차를 빼달라고 여차저차 설명하시는 분에게 그 자매님은 말했단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기도를 방해한다고... 이 자매님은 수시로 신부 수녀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미사 지향을 넣으시고, 기도 전엔 제대 앞에서 큰절로 '예'를 다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자신의 신앙적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며 대녀들에게 성당을 옮기라는 말도 서슴치 않고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판단(우리가 보기엔 얼토당토아니함)을 내리고, 특이한 뉘앙스로 독서를 읽는데 누구도 터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권위적이고 교만하며 폭언이 다반사인 사제나 수도자. 종교적 열성이라면 늘 최고라 자부하는 신자. 이들의 기도의 끝은 어디일까.


털어버리고 싶은 일들을 성당에서 쏟아내며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셨으리라 스스로 만족하는 걸로 기도(라 불리는 것)를 끝내버리는 건 아닌지, 내 잘못을 조금 시인한 후 그 댓가로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합리화의 길을 스스로 터득한 후 그것을 기도(라 불리는 것)의 결과라 여기는 건 아닌지, 하면 할수록 모르겠고 하면 할수록 낮아지는 자신을 발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철옹성 꼭대기에 갑옷 두르고 당당하게 서 있는 자신을 높은 경지에 다다랐다고 기뻐하는 건 아닌지, 형식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며 나를 위한 눈물을 흘리며 마음에도 없는 회개를 고백하고서는 기도(라 불리는 것)의 은혜라 감사하는 건 아닌지.


요새 내 기도는,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인정해야할 것들이 싫고 치뤄야할 것들이 두려워 그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껍데기가 주는 편안함을 조금만 더 누리고 싶어서. 덕지덕지 붙어 있는 껍데기들을 떼어 내는 수고로움과 고통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잠시 눈 감고 쉬고 싶은, 조금이라도 더 모른척 하고 싶은 상태. 기도라 불리는 외적 요소는 다 갖추었는지 몰라도 역시 껍데기는 껍데기. 


어제 아침, 일어나 잠옷을 벗는 동시에 손목에 감겼던 묵주가 터졌다. 알갱이들이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에 내 기도(라 불리는 것) 역시 산산히 부서져서 바닥에 흩어지고 있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지. 제 몫을 다하지 못함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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