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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시작이요 마침이신 주님 본문

vita contemplativa

시작이요 마침이신 주님

하나 뿐인 마음 2021. 12. 31. 22:52

송년 미사를 마치고 들어와 잠깐 한해를 돌아보다가 이 사진을 본다. 하루 종일 성탄 준비하느라 성당에서 동동거리다가 저녁기도 시간에 맞춰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 잠깐 찍은 사진이다. 보나마나 성야나 대축일 당일엔 막상 초 깎고 제의실 치우느라 구유 앞에 고요히 머물 시간이 없을테니 피곤한 몸도 좀 쉴겸 미리 예수님을 좀 보자 싶었다.

아무도 없는 성당. 퇴근하면서 켜두는 십자가 등을 미처 끄지 않고 구유의 반짝이를 켠 후 별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한동안 구유의 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십자가 예수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순결하고 가난한 아기로 태어난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막 태어난 아기 예수가 세상에서의 삶을 온전히 완수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올려다 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의 시작들을 생각했다. 매번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만으로, 세상에 대한 사랑만으로 시작했는가. 그리고 나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온전히 다 내어놓고 맡긴 후 태어난 때처럼, 남김 없이 아낌 없이 내어 놓고 가볍게 떠날 수 있을까. 모든 걸 마친 종내에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만 그분께 갈 수 있을까.

매순간 나 자신을 버리고 내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하는 삶이 내 삶이다. 그리고 시작과 마침은 이렇게 하나여야 한다.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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