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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8,11-12 아름답게 만개한 상태만이 목련은 아니다 #dailyreading 본문

루카의 우물/루카 18장

루카 18,11-12 아름답게 만개한 상태만이 목련은 아니다 #dailyreading

하나 뿐인 마음 2022. 3. 26. 23:25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루카 18,11-12)

설마 이 말씀이 단식과 십일조를 폄하하시기 위함이겠나. 강도나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를 편드시는 것이겠나. 다만 열심히 단식하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한 결과가 남을 판단, 비난하는 거라면 오히려 안하니만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니겠나. 뭘 했고 안 했고 보다, 하느님 앞에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며 자신을 낮추는 ‘솔직?하고 투명한 내적 상태!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내 영혼에 더 이로운 일임을 말씀하시는 것 아니겠나. 우리가 단식하고 십일조를 바칠 때만 하느님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녀원 담벼락 옆, 구석진 곳에 목련이 피었다. 수녀원 경당에서 나와 식당으로 가는 복도 창문 너머로, 식당 벽에 바짝 붙어서야만 창문을 통해 겨우 목련을 볼 수 있다. 조금 멀리에서만 볼 수 있고 그나마 가까운 꽃들은 모두 창문을 거쳐야만 볼 수 있어서 늘 아쉬운 존재다. 그래서인지 우리만 보기엔 너무 아깝다 아깝다 하면서도 우리라도 오래도록 보길 바라는 마음에 계절이 느리게 바뀌길 은근히 바라게 된다. 이 집에 사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볼 수가 없는데도 이렇게나 우아하게 피어난 목련. 수많은 꽃을 내고 탄성이 나올 만큼 한껏 피지는 않더라도 주어진 만큼 제 몫을 살아내는 꽃을 보며, 소탈한 봉오리 시절도 드문드문 최선을 다한 만개의 시절도 빛바랜 추억처럼 후두둑 떨어져내릴 낙화의 시절도 모두 그분 앞에선 솔직하고 투명한, 있는 그대로의 목련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동안 아름답게 만개한 상태만을 목련이라 부르진 않았나 싶어 오늘은 마냥 부끄럽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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