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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1 (26)
깊이에의 강요
메리 올리버.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일하고 돌아와, 기도 가기 전, 잠들기 전 ... 흩어진 조각을 모으는 심정으로 침대에 걸터 앉아 한 두 편씩 읽었다. 길을 잃었는데 하늘이 눈부셔 살고 싶었다. 파였던 심장이 서서히 아물고 부푼 정강이가 가라 앉는다. 조금씩 바닷물에 발을 담가도 좋겠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중에서 그래, 맞아. 당신은 삶에 대해 당신의 똑똑한 말들로 그 의미를 숙고하고 곱씹으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우린 그저 삶을 살아가지. -메리 올리버, 중-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그런데 왜 그걸 알아내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마르 1,10) 요한은 이미 말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요한이 이렇게 말한 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요한은 그분을 가리켜 자신은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했으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나도 듣고 싶었다. 성령이 내려오시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시고 내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알려주는 그 목소리가 내 안에 울려 퍼져 내 온 존..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요한 3,29)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모여들고 있음을 완곡하게 일러바치는 말에 대한 요한의 대답이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제자들이 일러바친 그 일도 하늘로부터 주어진 일이라는 말이 되겠다. 요한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이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신부)을 얻어야 하는 분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공생활이 시작되기 전, 예수님의 첫서원 같은 장면. 오늘은 이 장면에 머물러야 했다. 이는 성경을 제대로 들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분명 말씀 봉독이 끝났는데(두루마리를 말아 돌려주셨다 20절),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말씀을 읽는다(듣는다)는 것은 그 기록된(17절) 텍스트를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 22절)을 들어야 한다. 요즘 또 렉시오 디비나가 쉽지 않다. 아니, 여태껏 쉬웠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다시,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기록된 말씀을 읽은 후 들리는 예수님 말씀이 자꾸만 나를 관통하기 때문..
이소영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누군가의 ‘인생 화가’이자 이케아의 ‘정신적 모토’가 된 칼 라르손의 알려지지 않은 삶과 그림 이야기. 우연히 보게 된 책이지만, 그림과 더불어 칼 라르손의 삶 자체에서 안도를 느꼈다. 행복하지 않은데도 행복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을 굳이 기억하는 것, 모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에만 머물지 않는 것, 아픔을 준 과거를 붙들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칼 라르손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일상 만으로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보다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둘러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느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4,17. 23)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가신 예수님. 잠시 물러나신듯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땅, 거칠고 척박한 땅 즈불룬과 납탈리,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로 가셔서 소외된 이들, 가난과 고통으로 아파하는 이들 사이에 자리를 잡으셨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셨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에두르지 않는 회개 선포. 예수님은 사람들도 회개 앞에서 에두르지 않도록, 머뭇거릴 이유들을 하나하나 없애주셨다.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 2,12) 삼왕은,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아기를 경배하기 위해 별을 따라 나섰지만(행동했지만)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는 아기는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나리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아마 흔들리지도 않았으리라. 당연한듯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묻는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은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그분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나 역시 '이 길'로 가면, '이 곳'에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많았다. 내가 생각한 길, 아무리 심사숙고 하고 경험을 토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확신했던 길은 가끔 다른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흔들리지 않고 걸었어도 가끔 길도 잃었다..
천선란 장편소설. 허블. 코로나 시대 두 번째 미사 중단. 지난 부활대축일에 이어 성탄대축일 미사마저 신자들과 함께 본당에서 드릴 수가 없었다. 쫓겨나는 것도 아닌데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겨 본원으로 들어왔고, 장엄하게 드리는 본원 성탄 밤미사에서조차 서글픔이 기쁨보다 컸다. 그리고 미사 중지는 오늘부로 다시 연장되었다. 근래 해맞이 하러 집을 떠난 사람들, 새벽에 문을 연다는 술집, 끝까지 대면 예배를 고집해 결국 단체 감염이 된 교회, 병상을 찾아 떠돌다 생을 마감한 환자들 등의 뉴스를 보며 절망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은 절망에 고개 숙이고 못본 체 돌아서려는 나를 끝내 붙들어 세웠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것을 찾게 했고 나는 희망과 원망을 함께 품에 안았다. 콜리가 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