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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요한 3,22-30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dailyreading 본문

요한의 우물/요한 3장

요한 3,22-30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dailyreading

하나 뿐인 마음 2021. 1. 9. 08:22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요한 3,29)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모여들고 있음을 완곡하게 일러바치는 말에 대한 요한의 대답이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제자들이 일러바친 그 일도 하늘로부터 주어진 일이라는 말이 되겠다. 요한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이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신부)을 얻어야 하는 분은 예수님(신랑)이시고, 자신을 옹호하는 제자들 역시 자신의 사람이 아니며, 자신 또한 그분의 것이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 해도 이는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떼어놓는 것, 그들이 예수님을 더욱 향하도록 내 앞에서 돌려세우는 것,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서조차 스스로 떨어져 앉을 줄 아는 것, 내게 힘을 주고 사랑을 베풀어주는 이들에게 둘러 싸여 있더라도 매일 매순간 끊임 없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사랑을 저버린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 곁에서 매일 떠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내겐 더 어렵고 아픈 일이었다. 세상을 뒤로 한 채 떠나온 사람이라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요한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에 찼다.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분명한 자기 인식, 자신을 명징하게 깨달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기쁨.

 

요즘 골몰하게 되는 생각은 '사람을 돕는 것'과 '내가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의 차이에 관해서이다. 그럴리도 없지만 요한의 목적이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돕고자 세례를 베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세례를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도와주는 것과 '내가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상대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을 놓칠 수도 있고 내 사랑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서로 어긋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망은 오히려 그들을 더 어긋나게 하기도 하고, '내가' 도와야 하기에 남의 도움을 거부, 거절하거나 쉽게 여기고 못알아차리기도 한다,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도우려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니 타인의 마음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혹여 결과가 잘못되면 내 의도는 선했으니 '너의 탓'까지 하게 될 때도 있다. 내가 돕고자 한 일을 다른 사람이 했을 때 도움 받은 이의 기쁨에 동참하기는 커녕 내 일을 빼앗겼다 생각해 불쾌해 하거나 더 먼저 행하지 못했음에 자존심을 다칠 수도 있다. '내'가 무엇이 되려고 할 때, '나'에게 무엇이 되도록 할 때 우린 그분에게서 멀어진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너희는 내가 그리스도가 아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줄 아는 요한. 이는 자신의 목소리 말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말고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는'(29절) 사람의 자세이다. 그는 충만한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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