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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요한 3,16-18 (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레지오 훈화) 본문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16절)
요한 3,16절은 미국에 선교하러 가는 수녀들이 입국 심사에서 치르는 인터뷰 예상 질문 1순위입니다. 저도 달달 외우고 대사관을 찾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저에게 이 구절은, 온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믿고 붙들고 있어야만 이역만리 땅에서 선교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말 성경과는 달리 그리스어 성경의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로 시작하지 않고 ‘후토스(οὕτως)’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말의 ‘너무나’에 해당하는 ‘후토스(οὕτως)’인데요, ‘이런 식으로...(in this manner)’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합니다. 즉, ‘외아들을 내주시는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라는 의미이지요. 외아들은 가장 소중하고,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방식은 다름아닌 가장 소중하고,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마저 내어주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얼마나 신비로운 사랑입니까? 훈화를 준비하며 이 구절을 묵상할 때 내가 어떠한 사랑을 받고 있는가 싶어 마음이 매우 뭉클하고 벅찼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소중한 것, 유일한 것을 내어주는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내어주는 방식인지, 나를 채우는 방식인지는 좀 성찰해봐야겠지요.
그리고 이 사랑은 세상 즉, 말 잘 듣는, 재능 넘치는, 선한, 죄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모든 인간 군상이 모인 전체 세상을 향한 사랑이었고(인간만이 아니라), 그 사랑의 이유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 제외되는 이 없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늘 경계선이 분명하지요. 나 자신일 때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누구, 나를 따르는 누구, 가족이어서, 친구여서, 우리 성당 사람이라서 등등. 그러나 내어주는 하느님 사랑은 대상마저 한계가 없습니다. ‘누구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랑은 멸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는 이들 중에도 심판에만 귀기울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판으로 겁을 주는 목자, 심판을 피하려고 믿는 신자는 모두 하느님을 오해하고 있는 거지요. 우리는 멸망을 피하려고 덜덜 떨면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스스로 이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을 주는 영원한 생명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스스로 거부하고 제외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 있고, (더 잘해도 좋겠지만) 좀 부족한 때에도 그분 사랑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 놀랍게 신비로운 이 사랑 안에 한껏 머무는 한 주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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