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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1 (26)
깊이에의 강요
장한업 지음. 아날로그. 내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가 초래하는 ‘차별’을 반성하고 고치고 싶어 선택한 책이었는데 기대하던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나는 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편을 원했지만, 이 책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차별의 역사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는 ‘기초편’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문제를 적시하지 않고 시작과 과정을 친절하게 알려주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진지하고 친절한 책. 새길 내용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혼용한다는 내용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름에 초점을 맞추며, 내 기준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 내지 수용하고자 하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말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아 마땅한..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르 1,23-24) 회당 안 어쩌면 우리 안 내 안에도 분명 있다, '나와는 상관 없다'고 외치는 영. 좋은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중요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잘못된 일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필요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안타깝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맞는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믿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 성당에 다니긴 다니는데, 열심히 활동도 하긴 하는데,내것, 내가 불편해지는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못해내 안에서 들리는 '너와는 상관 없어'라는 속삭임에나도 몰래 귀 기울이지 않도록. 거룩한 곳(회당)에 있다고 해서 내 옆에 더러운 영이 없지 않고..
크리스토프 게르하르트 지음. 김혜진 옮김. 분도출판사.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는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한다.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넓혀나가면 나갈수록 하느님을 '알게' 되었던 사람들. 신비롭고 오묘한 우주 속에서 만난 하느님 이야기. 요 근래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야. 내가 찾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길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게 아닐까.' 하지만 아직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은 이 말이 큰 따옴표가 아니라 작은 따옴표 안에 있다. 언젠가 이 문장을 완성해서 상대 의견에 대한 반대, 혹은 실망, 좌절을 안겨주는 말이 아니라 응원이 되도록 하는 것, 이 책을 읽으면..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마르 4,39) #dailyreading 우리의 호들갑도, 오해로 인한 투정도 그분께는 기도였던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말한 후에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깨어나시어 바람을 멎게 하시고 바다를 고요하게 하신 일. 이미 한 배에 오르셔서 자신들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는 분을 오해하고 심지어 몰아세웠지만 그분은 제자들의 부족함에만 반응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의 날 서고 거친 말투에, 진심을 곡해한 제멋대로 판단에 먼저 반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에 먼저 반응하셨다. 내 아픈 곳이 건드려지면 그것에 우..
찰리 맥커시 글, 그림. 이진경 옮김. 상상의힘 용기와 우정에 관한 아름답고 놀라운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누구 하나를 내세우지도 않고 특별함을 부여하지도 않는 제목.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주인공이니 이 제목이야말로 정말 어울리는 제목 아니니?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조금씩 아픔을 가진 네 친구들의 여행. 이 여행을 지켜보며 내 옆에는 누가 함께 하고 있나, 나는 그들과 어떤 모습으로 이 길을 가고 있나 가만히 돌아보았다. 외로웠던 소년은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케이크에 집착했던 두더지는 “케이크보다 더 좋은 게” 있다는 것, 그건 “껴안는 것”이며 “그게 더 오래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질투로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고 숨겼던 말은 “괜찮아. 우린 널 사랑해. 네가 날..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마르 4,22) 어둠 속에 머물면 숨겨둔 것이 영원할 것 같고 감춘 것도 영영 잊힐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어둠 속에 머물려고 할수록 더 큰 어둠을 찾게 된다는 걸. 그러니 더더욱 빛으로 나아가자. 감출 곳이 없어도 두렵지 않는 빛, 빛이신 그분 앞으로. 비록 지금이 밤일지라도...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마르 4,5-6) 오늘은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이라는 구절에 머물게 된다. 흙이 깊지 않아 조금만 자라고도 일찍 싹이 흙 위로 드러났을 뿐인데, 마치 열매마저 영글었는 양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뿌리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서 말이다. 글 몇 줄, 책 몇 권으로 모든 걸 꿰뚫을 수 없고, 인생의 단면으로 어찌 전 생애를 평가할 수 있으련마는, 우리는 자칫하면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마치 열매마저 영글었는 양, 애잔한 삶을 살 수 있다. 얼마 전, 검색한 논문 몇 줄로 세계적인 석학과 빈약한 논쟁을 펼치던 이를 보았다. 내가 ..
- 알렉시스 발데스 - 폭풍이 지나갔습니다 길들은 엉망진창 그런 아수라장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마음은 찢어지지만 우리 운명은 축복받아, 그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할 것입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도 반갑게 포옹하고, 우리가 친구가 된 행운을 찬미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잃은 모든 것을 기억하며, 우리가 지금껏 배우지 못한 모든 것을 마침내 배울 것입니다. 모두가 고통을 겪은 까닭에 누구도 시샘하지 않을 것이고, 모두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서로를 더욱 동정할 것입니다. 무엇을 벌었느냐보다 모두에게 속한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 너그럽게 행동하며 훨씬 더 헌신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지만 너무도 유약한 존재인 걸 깨닫고,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과는 물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