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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1 (26)
깊이에의 강요
프란치스코 교황. 21세기북스. 교황님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 사랑은 누구의 사랑을 닮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책이다. 마치 하느님처럼, 예수님처럼, 교황의 사랑은 온 인류를 향해 있었고 그 지고한 사랑의 첫발을 그리스도인들이 떼어주기를 온맘으로 바라고 있었다. 아니, 외치고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온 인류가, 심지어 세상에 환멸을 가져오는 이들마저도 그의 품'안'에 있었다. 우리가 쉽게 적으로 간주한 이들,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손잡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 돌이킬 수 없는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들까지 모두, 팔을 안으로 굽혀 보듬고 다독이고 안아주어야 하는 이들이었다, 교황님에게는. 이론과 현실이 일치하도록, 하늘과 땅이 하나이도록, 기도와 삶이 하나이도록 하는 사람. 이를 혼자 하..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4) 오늘은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이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멈췄다. 사랑하는 이가 더 큰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는 걸 알게 된 비애, 그에게 닥쳐올 일과 그를 잃어야 함을 알기에 느끼는 비통함.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한 후 가눌 수 없는 비통과 비애를 안은 채 묵묵히 해야할 일을 하러 걸음을 떼셨을 예수를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고 단호하고 묵직한 걸음을 떼며 갈릴래아로 가셨을 예수.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허투루 떼지 않고 나아가셨을 예수. 가끔 비참하고 서글프고 고적하더라도, 이 예수의 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넘어진 사람을 보면 먼저 일으켜 세우는 일이 당연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걷는 이를 보면 짐을 덜어주려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살다보면 이 당연한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감정의 군더더기가 없어야하고 어쩌면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생각도 단순한 편이 낫다. 상대를 안다는 생각은 하소연도 외면하게 만들고, 덜 아문 상처나 해결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으면 스스로 초라해질 만큼 손 한 번 내밀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럴 땐 마음 속 진짜 이유를 잘 들여다보고 나를 다독여주는 일이 먼저일 수 있다. 군중들이 꾸역꾸역 집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dailyreading 죄인 취급하며 함께 음식을 먹는 것마저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고, 죄인일지라도 초대하여 함께 음식까지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에 의해서 내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대하는 내 태도가 나를 달라지게 한다. “그가 000이라서 내가 이러는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지... 방향을 바꾸는 건 내 몫.
임홍택 지음. 웨일북. 기업 내에서 신입 사원으로 들어오는 90년대생을 맞이해야하는 기존 세대들을 위해 쓰인 책. 저자도 말했듯이, 한 세대를 특징 짓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도 않고 옳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해를 위해 출발한 책인 만큼 나 역시 내가 만나는 이들, 무엇보다 새로 입회하는 젊은 세대 지원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조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읽었던 책이다. 제일 마음에 와닿은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솔직함’에 관한 내용이었다. “90년대생들에게 솔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솔직함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 그들에게 솔직함이란 자신의 솔직함 뿐 아니라 남들의 솔직함도 포함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솔직함을 말하고 가르치고 요구하던 기존 세대가 솔직하지 못했기에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정의를..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0-11) 오늘은 예수님을 만난 후 중풍 병자가 해야했던 일을 묵상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스스로 일어나/ 그동안 나를 떠받치던 들것을 내 힘으로 들고/ 홀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의지하던 자리, 내 약함과 고통의 상징이자 안주와 자기 연민의 늪, 변명과 유혹의 자리인 들것을 들고. 요며칠 방정리를 하고 있어 더욱 이 장면에 마음이 머물렀나 보다. 이제 다리도 제법 나았기에 양호동을 떠나기로 했다. 인사이동 전에 방을 옮기는 게 당연한데도 나를 염려하시는 분들은 당장 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좀 더 있다가 올라가라고 해주셨다. 그 마음을 알기에 말만으로도 고맙고 따뜻했다. 하지만 아픈..
이미상, 임현, 전하영. 문학과 지성사. 문학과지성사가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시리즈.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 문학을 소개한다고 하는데 이미상 작가의 는 이제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였다. 다만, 지금을 사는 한국의 여자라서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 임현 작가의 는 십여 년 전 어떤 일을 떠올리게 한 소설이었다. 써도 삼켜야 하는 약이라 힘들어도 넘어가야 하는 언덕이라 생각했는데, 책을 덮은 채, 합리화된 변명이었을까, 했다. 시집만큼 얇은 소설책이 얼마나 무겁던지. 그래도 생각을 거듭하면서 살고 싶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덜 하면서 말이다. 별거 아닌 일에 내가 괜히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어쩌면 설명하기 어려운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단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