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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6 (17)
깊이에의 강요
정세랑 소설집. 창비. 읽을 수록 반한다. 반한다. 반한다. 이모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으니 조카가 이제! 책을 좀 읽어야겠다며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읽히고 싶었던 책을 몇 권 알려주다가 결국 함께 동네 도서관에 가서 회원 등록도 하게 만들고 책을 골랐다. 그 첫째가 였는데 당연히 모두 대출 중이라 신청만 해두고 작가 시리즈로 를 빌려왔다. 결국 조카보다 먼저 읽고 나는 또 이렇게 이 책에 반해 있다. 이모의 장례 동안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각각 네 자매의 자녀들인데, 엄마들은 일본에서 해방 직후 건너 왔고 아버지들 중 둘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분들이라 친척이 거의 없어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오랜 만의 옛날 얘기, 이모에 대한 각자의 추억을 나누며 나는 거대한 모자이크를 생각했다. 조..
이모에게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이 왔고, 오랜 투병 생활을 한 이모를 더 이상은 고통스럽게 오래 붙들어 둘 수는 없기에 연명 치료를 중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호흡기까지 뗄 수는 없어 하루를 더 기다렸지만, 호흡기를 달고 있어도 밤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이모는 맥박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생의 시간을 고통 속에서 이어가는 이모를 위해 호흡기를 떼어 드리고 편히 하느님 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반겨줄 곳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올라와 있다. 입회한 후 스무 번이 넘는 연피정을 하면서 이렇게 중간에 피정을 마친 것은 처음이었다. 시작을 했으면 제대로 마치는 것이 늘 당연하고 심지어 ‘옳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열흘 간의 연피정이 삼 일만에 끝맺음을 할 수도 있..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 지음. 이원경 옮김. 밝은미래. 농담처럼 여름이니까 납량특집 하나 읽어야지 하면서 집어든 책. 책을 덮고 나니 뒷다리 한 쪽이 보이지 않는 미야와 오른쪽 앞다리가 짧은 미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귀여운 오싹함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어린 여우가 헤쳐나갈 세상이 가볍거나 만만하진 않았다. 자기 깜냥을 안다는 건 이런 것일까. 두려워서 덜덜 떨면서도,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도, 힘들고 외로워 엉엉 울면서도,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이 가야할 길을 헤쳐나간다. 이야기가 정말 그럼직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우애 좋은 형제들, 인자한 아빠, 선한 이웃… 등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없거나 변해버린 것에 매달리기보다 스스로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간 미아와 율리. 이..
“자기가 믿음 안에 살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 따져 보십시오.” (2코린 13,5) 연피정을 시작했다. ‘자격이 없는 나를 30년 동안이나 쓰셨다’며 피정 강의를 시작한 신부님. 첫미사 때 신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경험을 나누며 자격이 없는 자신을 아직도 내치지 않으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 강의를 하루에 두 번이나 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저녁에도 뭔가가 있는 피정은 난생 처음이라 엄청난 스케줄에 처음부터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 마음이 조금 녹았다. 이대로 하느님 앞에 선 나를 들여다 본다. 저녁에 잠시 걷다가 본 홀씨가 떠올랐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결국 시들고 홀씨가 되어 또 다른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토록 붙들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붙들며 살고 있나. 홀..
제임스 마틴 지음. 심종혁 옮김. 성서와함께. 오랫 동안 교리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울타리’이다. 나의 개인적 생각이 가톨릭의 입장은 아니지만, 내가 배우고 이해하고 살며 가르치는 교리는 울타리와 같아 안과 밖을 분명히 구분하고 안을 보호하고 지키며 안과 밖을 함부로 넘나들지 않고 정해진 문을 통해 오가도록 돕고 닫아야 할 때 닫고 열어야 할 때 열며 좁혀야 할 때와 넓혀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번역하신 신부님도 말씀하셨지만, 울타리는 언제고 다시 허물고 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울타리가 옳지 않거나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낡아서 더 이상 제 구실을 할 수 없거나 기후 등이 변함에 따라 다른 재질의 울타리를 세워야 하거나 경계를 달리 세워야 할 때. 울타리는 울타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울타리..
이현 장편동화. 오윤화 그림. 창비. 요즘 읽었던 책들이 주로 그랬지만, 와니니 3권은 특히나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들만이 아니라 혼자서 살아가는 동물도 초원에서는 ‘함께’ 산다. 서로를 도와야만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와니니 이야기. 빌려간 동생 수녀님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빌려주고 도서관에서 1,2권을 빌려 새로 시작하게 만들면서 나한텐 아주 나중에 돌아왔지만, 와니니 3권을 덮고 나니 오래 기다려 줄 줄 아는 것도 ‘함께 사는’ 일이란 걸 알겠더라. 더불어, 좋은 책을 나눌 줄 아는 것도 함께 사는 방법이겠지. 먼저 받았으니 기꺼이 내놓을 줄 아는 자세,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를 희생하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 푸른..
유여 글, 그림. 호우야.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누구도 가보지 못했을 법한 길을 걷고 있는 소소님과 가족들. 일상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깨닫게 해주지만, 누군가의 일상이 세상이 흔히 말하는 일상이 아니어도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용기를 주고 위로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웹툰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지극히 평범해도 혹 조금 특별해도 그것은 일상이며 우리는 그 일상을 살아가며 무르익는다. 부디 영원토록 행복하시길, 소소님 토토님 열무와 알타리! 그리고 세상 모든 가족들(어떤 형태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