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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43)
깊이에의 강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순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올랐다 해도 지나쳐온 단계를 다시 언제고 다시 올라야 하는 사다리.내려올 때마저 우리는 하늘을 향해야 하고사다리말고 다른 길은 찾지 말 것이니. 나의 열심으로는 오를 수 없음을 명심할 때 비로소 조금 오를 수 있는 사다리.다 오른 후 우리가 도달할 곳은 수덕의 높은 경지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리라. 주어진 하루로는 모자라 며칠 동안 겸손에 대한 장을 묵상했다. 해도해도 모자랄 묵상이겠지만, 다음으로 나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이쯤에서 마쳐야 하기에 성당에 앉아 규칙서를 덮은 후 눈을 감고 좀 쉬자 싶었다. 생각을 좀 가라앉힐 요량이었는데, 조금 후에 가만히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 토끼를 쫓느라 한 시간 여를 헤맨 사냥개 ..
삶이란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법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활동하며 사는 이는 자신의 죄조차 볼 수 없네. 하지만 침묵에, 특히 고독에 머물게 되면 그는 사물의 진정한 상태를 보게 되지. -어느 사막의 수도자-
겸손의 단계를 시작하면서 성인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늘 눈앞에 두어 잠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특히 '늘'(semper)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그저 알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기억하는 노력을 하라는 뜻이리라. 나는 이 첫 단계를 묵상하면서 '하느님 면전'을 떠올렸다. 현존 속에 머문다는 것은 내 삶이 늘 하느님 면전에 있음을 알고 기억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느님 얼굴을 늘 내 눈 앞에 두는 것, 반갑고 기쁠 때도 있겠지만 어렵고 때론 괴로운 때도 분명 있으리라. 그러나 하느님 면전에서 떠나지 말 것.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잊은 적이 없으시니(이사 49,15 참조) 이는 곧 하느님 면전에서 '떠날 수 없음'을 기억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 옳고..
'겸손'(humilitas)이라는 단어가 '흙'(humus)에서 왔다는 말은 입회 후 수도 없이 들었고, 매년 재의 수요일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겸손이라는 단어 앞에서 흙을 묵상할 때마다, 겸손의 첫째 단계에조차 아직 들어서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발 밑에서 늘 밟히는 흙. 밟히는 일에 관대하고, 늘 가장 아래 자리를 자처하는 수도자는 언제쯤 될 수 있을까. 흙은 나와 아주 가까이 있지만, 흙의 영성은 나와 너무도 멀구나.생명을 존재, 성장하게 하는 흙은 어떤가. 내게 온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수도자. 자신을 모조리 내어놓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인지라, 반쯤 겨우 내어놓고는 남은 게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 내..
"수도승들은 언제나 침묵을 지키기에 힘써야 하겠지만, 특히 밤 시간에 그러하다."(RB 42,1) 규칙서에 의하면 저녁기도와 식사를 마친 후(식사가 없는 날엔 저녁기도 후)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성서를 듣는다. 이후 를 바칠 것이며, 이후엔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는 대침묵이 시작된다. (사려 깊은 성인은 이 대침묵에도 예외를 두지만, 최대한의 신중함과 가장 적당한 절제로 행하라고 덧붙인다.) 이 장을 읽으면 우리의 침묵은 고요를 위해 소리를 소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침묵의 시간은 예외 없이 모두가 모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인 후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뜸을 들이는 시간이다. 서두르지 않고, 섣불리 열어보지 않고, 잠잠히 기다림으로써 수도승으로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
이 장의 제목은 '침묵에 대하여'인데 여기에 쓰인 단어 침묵은 silentium(입을 다물고 있는 행위 자체. 고요함. 말을 하지 않음. 더 절대적)이 아니라 taciturnitas(듣기 위해 귀기울여 말을 하지 않는 행위. 덕행으로써의 침묵)이다. 즉, 이 장은 덕행으로써의 침묵에 대해 다루는 장으로, 성인은 시편 38,2-3의 인용으로 시작하여 "침묵의 덕을 닦기 위해 때로는 좋은 담화도 하지 말아야 했다면 하물며 죄의 벌을 피하기 위해서 나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라고 이어간다. 성규 내용 중에 내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게 부담스러우니 과하다고 생각할 뿐, 덕행으로써 침묵을 수행할 때엔 좋은 말조차 침묵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성규는 침묵의 덕을 배우고..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시편 23) 피정이 시편 23편 그 자체이다. 내 삶은 한평생 이 시편을 노래하는 삶일 것이고,이 기도는 죽음 후에도 이어져 내가 노래할 시편일 것이다. 주님, 당신의 말씀 자체가 제게 오롯이 은총..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라는 말씀을 이렇게 선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때가 또 있을까 싶다. 나는 비록 그때에 감사하지 못했지만, 내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는 지금의 나를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주고 있다. 그때에도 감사드릴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순명했고, 기다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