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RB 제7장 겸손에 대하여'를 시작하며 본문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RB 제7장 겸손에 대하여'를 시작하며

하나 뿐인 마음 2020. 6. 10. 21:51

 

'겸손'(humilitas)이라는 단어가  '흙'(humus)에서 왔다는 말은 입회 후 수도 없이 들었고, 매년 재의 수요일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겸손이라는 단어 앞에서 흙을 묵상할 때마다, 겸손의 첫째 단계에조차 아직 들어서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발 밑에서 늘 밟히는 흙. 밟히는 일에 관대하고, 늘 가장 아래 자리를 자처하는 수도자는 언제쯤 될 수 있을까. 흙은 나와 아주 가까이 있지만, 흙의 영성은 나와 너무도 멀구나.

생명을 존재, 성장하게  하는 흙은 어떤가. 내게 온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수도자. 자신을 모조리 내어놓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인지라, 반쯤 겨우 내어놓고는 남은 게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 내 모습이다.

품어서 거름으로 바꾸어내는 흙은 또 어떤가. 내 안에서 썩어, 거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온전히 받아 안을 것. 씨앗이 썩는 정도의 과정만이 아니라 오물과 오취까지 받아들일 것. 아...

 

나는 누군가에게 흙이 된 시간보다 흙처럼 나를 받아 안아준 이들 덕에 성장한 시간이 더 길다. 덕분에 싹을 틔우고, 무사히 자라서 지금까지 왔다. 부끄럽지만 나를 세워주고, 보듬어 성장하게 하고, 나의 오물과 오취까지 말없이 받아 안아 주며 내게 흙어 되어준 이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시작과 끝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안다.

겨우 묵상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다시 시작부터 막혔다. 베네딕도 성인께서 성서가 소리쳐 말한다며 꺼낸 말씀이 또 나를 부끄럽게 했다.

 

형제들아, 성서는 우리에게 소리쳐 말하기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하신다. 이 말씀으로써 성서는 자기를 높이는 모든 짓이 교만의 일종임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RB 7,1-2)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지금 이 피정을 하게 된 이유가 '주님의 위로'라 생각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께서 지친 나를 쉬게 하시기 위해 2년 전이 아니라 지금 부르신 것이라고. 그런데 그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교만으로 내려가고 있는 나를 겸손으로 끌어올리시기 위해서라는 걸, 이 장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알았다. 교만으로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도, 그게 교만인 줄 몰랐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높이고 높여서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고 있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