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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43)
깊이에의 강요
"수도원 안에서 차례는 이렇게 정할 것이니, 즉 수도생활을 (시작한) 때와 생활의 공적에 따를 것이며 또한 아빠스가 정하는 대로 할 것이다."(RB 63,1) 세속의 순서를 거부하고 입회 순으로 차례를 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허성석 신부님은 '하느님께 먼저 돌아선 순서'와 '하느님께 앞서 나아간 순서'에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에 따른 순서를 허물고 하느님께 돌아선 회심의 시간을 수도자의 '처음'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수도 연륜이 시간에 의존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한다. 즉, 회심이 깊어야 수도 연륜도 깊어진다. 나의 경험으로도 나이 순서를 허물고 새 순서를 받은 우리는 '높고 낮음'의 질서에 더 이상 편승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 '형제 자매'로 서는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입회절차에 관한 장을 세번에 걸쳐 묵상하는 동안, 내가 이 길을 이렇게 다 걸어왔구나 싶어 새삼 감사했다. 반복하여 규칙서를 읽어가며 내가 처음 마음 먹었던 것들도 기억해 내고, 잃거나 퇴색한 것들도 묵상했다. 무엇보다, 지금도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 '하느님의 일과 순명과 모욕에 열성을 다하는지'에 대해서도. 대수련자 때까지만 해도 내가 해야할 일들에 집중하느라 성규에서 공동체의 얼굴을 잘 찾지 못했었다. 아마 여전히 나는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이었기에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입장을 생각할 여유도, 그럴만한 철도 없었으리라. 이번 피정의 큰 선물 중 하나가 성규를 읽을 때 그 동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공동체 형제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장에서도 (내가) 입회를 준비하고 입회해서 수련시..
분량도 짧지만 서로 무관하다 싶은 내용이 이렇게 뜬금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가 싶었는데, 묵상하다보니 기도 종을 염려하는 일이 아빠스의 일이라는 것과 기도 선창자의 자세, 이 두 내용이 왜 함께 묶여 있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낮과 밤, 하느님의 일을 위한 시간을 알리는 일은 수도자의 몸에 온전히 배도록 언제나 '제시간에 완수'(1절)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제 때에 기도 종이 울려야 하고 이 일은 우선적으로 아빠스가 돌봐야 한다. 이렇게 오랜 수도생활 동안 반복하여 몸에 밴 기도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텅 빈 기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시편이나 후렴의 선창은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만큼 이 직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3절)이 '겸손과 신중함과 두려움'(4절)을 가지고 노래하거나 독서해야..
30일 피정자는 따로 신부님을 초대해서 성사를 봤다. 우리들이 성인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분인데, 이렇게 맑고 곧으면서도 온유할 수 있을까 싶은 분이다. 영혼이 정돈 되어 있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딱 11년 전 대수련 30일 피정 때도 이 신부님께 성사를 봤었다. 그 피정 때는 종신토록 이 봉헌의 삶에 나를 묶느냐 마느냐의 피정이었다. 피정이 깊어질수록 나는 하느님 은혜의 심오함과 수도생활의 귀한 가치를 내 영혼의 얄팍함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고해성사를 보다가, 빈 영혼의 바닥을 박박 긁다가 지치고 지쳐서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말을 꺼내니, 눈이 동그래지시면서 "나는 아주 잘 살 것 같은데요?" 이렇게만 말씀하셨다. 나는 하도 지쳐서 그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혼자 좀 울다가 성사를 ..
“매일 제6시와 제9시의 식사에 모든 식탁에는 요리된 두 가지 음식이 넉넉한 줄로 믿는다.”(RB 39,1) 이 장에는 충분하다는 단어(sufficere)가 세 번이나 나온다. 넉넉한 줄로 믿는다(1절), 충분할 것이며(3절), 충분할 것이다(4절). 베네딕도 성인이 지금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넘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도록 염려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기본으로 두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각자의 연약함 때문이니, 한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함”(RB 39,2)인데, 여기에 과일이나 연한 채소가 있다면 세번 째로 주라고 덧붙이고, 노동이 심한 날엔 아빠스의 재량에 맞긴다. '각자의 연약함'이라는 말이 너무나 따뜻하게 들린다. ..
제36장은 병든 형제들에 관한 규칙이다. 이 장은 "모든 것에 앞서 모든 것 위에 병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한다."(RB 36,1)로 시작하는데 덧붙여 "그리스도께 하듯이"(RB 36,1) 그들을 섬기라고 하면서 성경 말씀까지 인용한다. 상처 입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바로 병든 형제를 돌보는 길이라는 뜻이리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섬김'이다. '돌봄'을 '섬김'의 태도로 할 때, 상처 입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단락도 바꾸지 않고) 성인은 곧바로 "그러나 병자 자신들도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섬김을 받고 있음을 생각하며, 자기를 섬기는 형제들을 지나친 요구로 근심시키지 말 것이다."(RB 36,4)라고 덧붙임으로써 병든 나를 상처 입은 그리스도처럼 대하는 형제..
형제들은 서로 섬길 것이며(RB 35,1), 사랑으로써(RB 35,6), 불평이나 지나친 노고 없이 자기 형제들을 섬기게 할 것이다(RB 35,13). 베네딕도 성인은 주방의 주간 봉사자들(35장)과 주간 독서자(38장)에 대한 장에서 '섬김'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수도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섬긴다. 그리고 이 섬김은 병든 형제들과 있을 때 더 완성된다. "모든 것에 앞서 모든 것 위에 병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한다."(RB 36,1) 연약한 이, 아픈 형제들에 대한 연민이 특히 더 지극한 성인은 병든 형제들을 섬길 때 '그리스도께 하듯이'(RB 36,1), 두 번이나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라'고(RB 36,6. 7) 한다.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 있어 어떤 마음가짐이이어야 하는가. "당번에서 물러가..
RB 제41장 형제들이 어느 시간에 식사해야 하는가 -부활주일 ~ 성령강림 - 부활; 단식 해제. 하루 2번 식사 -성령강림 ~ 9월 13일 - 여름; 수,금은 하루 1번. 나머지는 2번(밭일이나 더위가 심한 날은 예외) -9월 14일 ~ 사순시작 - 겨울; 오후 3시에 한 번 식사 -재의수요일 ~ 부활 - 사순; 엄격한 단식. 저녁 1끼 수도승이 식사를 언제, 몇 번 할지 마저도 규정해 놓은 규칙서를 읽다가 수도자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부활, 여름, 겨울, 사순'이라고 적어 보았다. 부활, 여름, 겨울, 사순에 맞춰 식사량과 식사 시간을 정하고, "모든 계절에도, 저녁식사이든 한 끼 식사이든 이렇게 조절하여 모든 일을 햇빛이 있을 때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다."(RB 41,9)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