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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RB 제39장 음식의 분량에 대하여 본문
“매일 제6시와 제9시의 식사에 모든 식탁에는 요리된 두 가지 음식이 넉넉한 줄로 믿는다.”(RB 39,1) 이 장에는 충분하다는 단어(sufficere)가 세 번이나 나온다. 넉넉한 줄로 믿는다(1절), 충분할 것이며(3절), 충분할 것이다(4절). 베네딕도 성인이 지금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넘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도록 염려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기본으로 두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각자의 연약함 때문이니, 한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함”(RB 39,2)인데, 여기에 과일이나 연한 채소가 있다면 세번 째로 주라고 덧붙이고, 노동이 심한 날엔 아빠스의 재량에 맞긴다. '각자의 연약함'이라는 말이 너무나 따뜻하게 들린다. 욕심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편식이라 단정지을 수도 있는데, '각자의 연약함'이라 생각할 줄 아는 군더더기 없는 마음은 '둘 중 어느 것에도 개의치 않는 이'와 더불어 모두를 공동체로 아우른다.
이렇게 부족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염려하지만, “무엇보다도 과식”(7절)을 조심하라고 엄히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과식으로 수도승들의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신체의 일상 리듬 또한 깨지지 않도록 염려하기 때문이다. 수도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스스로가 분별하여 그 분량을 조절해야 할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음식이 충분한 이들과 부족한 이들이 공존한다. 수도자는 어느 시대를 살든 자신의 삶에 맞도록 식사를 해야함이니,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도 부끄럽지 않게 나 자신도 잘 돌아봐야겠다.
언젠가 단식피정을 다녀온 적이 있다. 피정 초반에는 단식이 크게 힘들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몇몇은 피정 중에 떠나가기도 했는데 식욕이라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쥐락펴락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떠오르긴 해도 피정이 끝나는 날까지 별로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복병이 따로 있었으니, 다름 아닌 책이었다. 단식피정 내내 성경 말고는 읽을거리가 없음이,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느낄 글 한줄 없는 시간이 나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 수준이었던 것. 단식 피정을 다녀와서 내가 얻은 건 취약한 욕구에 대한 재확인, 지적욕구에 대한 성찰인 셈이었다. 이렇게 단식이나 음식의 절제는 자신의 취약한 욕구를 들여다 보게 하고,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직면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조금씩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나 자신이 어떤 욕구에 더 약한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영성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자들이 스스로 영육을 둔하게 만들지 않길 원했다. 성인의 말씀따라 나도 이 피정 동안 나의 영성 상태와 부족한 부분들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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