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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르코의 우물 (134)
깊이에의 강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마르 11,9)라고 외치던 이들이 머지 않아 "십자가에 못받으시오!"(마르 15,13)하고 외쳤다. 기뻐하며 환호하던 나와, 죽여라 악을 쓰는 나는 같다. 그런 나를 보시고 예수님은 하늘을 향해 기도하신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마르 15,14) 도대체 예수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 윽박질렀던 군중. 시비를 가릴 생각은 애초부터 없고 파괴할 생각 뿐이었던 이들은 예수를 죽이고도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껏 존재한다. 나는 이들 곁에 서서 무엇을 해야할까. 사람들의 환호성은 언젠가 ..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2-13) 오늘은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자 한다. 예수님을 광야로 보낸 분은 다름 아닌 성령, 즉 예수님의 광야는 하느님의 뜻이었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시련을 맞이하곤 한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오해를 받고, 이름도 소리도 없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의심을 사기도 한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가 있는 그대로 보여지지 않는 순간, 우리는 이미 광야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의 내보내심, 즉 하느님의 뜻이다. 사순절을 시작하자마자 마치 예비되었던 것처럼 내게 광야가 펼쳐졌..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0절) 낫게 해 달라고 엎드려 소리치며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대담하게 경계를 넘어서 예수님 앞에까지 다가갔으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낫기를 원하니 제발 낫게 해달라 말하지 않고 이렇게 담담한 어조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니,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자신의 원의를 말하지 않고 예수의 원의를 언급하는가. 오늘따라 이 나병 환자의 담담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한 (나에게 그렇게 보여지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왜 애절하게 매달리지 않나, 왜 간절하게 부르짖지 않나.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까지 넘어 그분 앞에 섰으면서도 왜 이렇게 점잖기만 한가. 나병은 감염된..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마르 12,35-36) 생각이나 말로만 깨어있겠다 다짐하지 말고 허리에 띠를 매어 언제 부름을 듣더라도 즉시 행동으로 응답할 수 있는 상태로 내 몸을 준비시키고, 내 몸 하나만 깨어있지 말고 등불을 켜서 나와 내 주위를 밝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도 넘어지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나를 둘러싼 환경도 준비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마르 7,28)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것. 이방인이라는 외적 제약에도, 자존심이라는 내적 제약에도 굴하지 말고 기도할 것.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기도할 것. 내 묵상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내가 나에게 당부하는 이 말이 예수님 말씀 같구나. 생각을 정리하기 힘든 시간이 시작된 것 같다. 문장 한 줄 완성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글로 쓴다고 해서 묵상에 충실한 것은 아니니, 이런 시간엔 말로 다 못할 기도를 그저 마음에 품은 채로 그분 앞에 머물자. 말하기 힘든 시간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마르 6,54-55) #dailyreading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갔다. 가만히 있으면서 기도만 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마르 6,33) 오늘은 배를 타고 떠나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육로로 함께 달려가는 장면에 머물렀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달려갔던 사람들. 눈 앞에서 떠나갔다고 해서 그분 은총이 멈추랴. 내가 그분이 가실 그곳으로 먼저 달려가는 것도 기도요 은총일 것인데. 내게서 떠나갔다고 생각될 때라도, 내 눈에 그렇게 보였을지라도 돌아서지 않을 것.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 그때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34절)하신다. 늘 그분이 내게 먼저 오시..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마르 6,20) 요즘 홍은전의 을 읽어서인지 오늘은 헤로데의 생일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직접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주위에 분명 함께 있었던 사람들. 헤로데의 생일 잔칫날 헤로데 곁에서 먹고 마실 수 있었던 고관들이었고 무관들이었고 갈릴래아의 유지들이었던 그들은 나름의 명예와 권위를 지녔을 테지만, 의롭고 거룩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이들은 아니었다. 버젓이 살해가 종용되는 자리에서 그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한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님들 앞이라 망설이며 괴로워하던 헤로데에게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음으로써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