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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르코의 우물 (134)
깊이에의 강요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0-11) 오늘은 예수님을 만난 후 중풍 병자가 해야했던 일을 묵상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스스로 일어나/ 그동안 나를 떠받치던 들것을 내 힘으로 들고/ 홀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의지하던 자리, 내 약함과 고통의 상징이자 안주와 자기 연민의 늪, 변명과 유혹의 자리인 들것을 들고. 요며칠 방정리를 하고 있어 더욱 이 장면에 마음이 머물렀나 보다. 이제 다리도 제법 나았기에 양호동을 떠나기로 했다. 인사이동 전에 방을 옮기는 게 당연한데도 나를 염려하시는 분들은 당장 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좀 더 있다가 올라가라고 해주셨다. 그 마음을 알기에 말만으로도 고맙고 따뜻했다. 하지만 아픈..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마르 1,10) 요한은 이미 말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요한이 이렇게 말한 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요한은 그분을 가리켜 자신은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했으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나도 듣고 싶었다. 성령이 내려오시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시고 내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알려주는 그 목소리가 내 안에 울려 퍼져 내 온 존..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마르 8,11) 하늘에서 오는 표징이 있으면 더 좋겠으나 그게 내 뜻대로 오겠는가. 내 뜻대로 오길 원한다면 이미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그저 내뜻일텐데. 하늘에서 오는 표징은 하늘의 뜻이어야 한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마르 16,17) 사도 바오로의 회심 축일에 이 복음을 읽는다.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던 때도 하느님을 섬긴다 확신했던 바오로가 추락하여 예수님을 만난 후 회심한다. 진짜 믿는 이들에겐 '회심'이라는 표징이 따른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내가 살지 못하는 복음은 남에게도 전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이 마지막 말씀은 제자들 자신부터 복음화하라는 말씀이시고, 모든 피조물(인간만이 아니라)에게 복음이 닿을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시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마르 9,24)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기에 기도할 수 있다. 기도의 시작은 믿음이 아니라 그분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믿음이 약하다 여기는 이들도, 믿지 않는 이들도 기도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마르 9,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변화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께서 변화하신다. 내가 변해야지 세상이 변한다는 말,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셈.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면, 남을 변화시킬 때보다 내가 변화할 때 오히려 효과적이겠지.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트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마르 7,28-29)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계실 수가 없었던 예수. 아직 때가 아니라는 냉정한 거절에 물러설 수 없었던 여인. 원하진 않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청을 들으셨던 예수처럼, 사소한 말 한마디에 걸려 넘어지기보다 딸의 치유를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여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