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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르코의 우물 (134)
깊이에의 강요
둘씩 짝지어...(마르 6,7) 언젠가부터 복음의 한 문장도 벅차고 넘치는지, 묵상을 시작하면 한 구절이나 한 단어에 붙들린다. 마음의 여유가 좀 없나 싶지만 이 하나의 구절을 붙드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은 ‘둘씩 짝지어’라는 구절이다. 둘씩, 짝지어... 같이 가되 각자의 성실로만 채울 수는 없는 일. 각자의 길을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도 되는 삶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야 하는 삶. 나의 부족을 네가 채워야 하고(네가 하고픈 일이 아니라), 네게 필요한 것이 나의 우선이 될 때도 있는 삶. 그렇기에 우리의 차이는 도전이 되기도 하고 공백이 되기도 한다. 내가 편한 곳이 아니라 함께 머물 수 있는 곳에 머물고, 지팡이를 쥐지 않은 나머지 손은 너를 의지하거나 너를 부축하는 손이 될 때가 많을 것이니 ..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르 1,23-24) 회당 안 어쩌면 우리 안 내 안에도 분명 있다, '나와는 상관 없다'고 외치는 영. 좋은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중요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잘못된 일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필요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안타깝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맞는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믿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 성당에 다니긴 다니는데, 열심히 활동도 하긴 하는데,내것, 내가 불편해지는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못해내 안에서 들리는 '너와는 상관 없어'라는 속삭임에나도 몰래 귀 기울이지 않도록. 거룩한 곳(회당)에 있다고 해서 내 옆에 더러운 영이 없지 않고..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마르 4,39) #dailyreading 우리의 호들갑도, 오해로 인한 투정도 그분께는 기도였던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말한 후에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깨어나시어 바람을 멎게 하시고 바다를 고요하게 하신 일. 이미 한 배에 오르셔서 자신들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는 분을 오해하고 심지어 몰아세웠지만 그분은 제자들의 부족함에만 반응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의 날 서고 거친 말투에, 진심을 곡해한 제멋대로 판단에 먼저 반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에 먼저 반응하셨다. 내 아픈 곳이 건드려지면 그것에 우..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마르 4,22) 어둠 속에 머물면 숨겨둔 것이 영원할 것 같고 감춘 것도 영영 잊힐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어둠 속에 머물려고 할수록 더 큰 어둠을 찾게 된다는 걸. 그러니 더더욱 빛으로 나아가자. 감출 곳이 없어도 두렵지 않는 빛, 빛이신 그분 앞으로. 비록 지금이 밤일지라도...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마르 4,5-6) 오늘은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이라는 구절에 머물게 된다. 흙이 깊지 않아 조금만 자라고도 일찍 싹이 흙 위로 드러났을 뿐인데, 마치 열매마저 영글었는 양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뿌리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서 말이다. 글 몇 줄, 책 몇 권으로 모든 걸 꿰뚫을 수 없고, 인생의 단면으로 어찌 전 생애를 평가할 수 있으련마는, 우리는 자칫하면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마치 열매마저 영글었는 양, 애잔한 삶을 살 수 있다. 얼마 전, 검색한 논문 몇 줄로 세계적인 석학과 빈약한 논쟁을 펼치던 이를 보았다. 내가 ..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4) 오늘은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이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멈췄다. 사랑하는 이가 더 큰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는 걸 알게 된 비애, 그에게 닥쳐올 일과 그를 잃어야 함을 알기에 느끼는 비통함.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한 후 가눌 수 없는 비통과 비애를 안은 채 묵묵히 해야할 일을 하러 걸음을 떼셨을 예수를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고 단호하고 묵직한 걸음을 떼며 갈릴래아로 가셨을 예수.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허투루 떼지 않고 나아가셨을 예수. 가끔 비참하고 서글프고 고적하더라도, 이 예수의 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넘어진 사람을 보면 먼저 일으켜 세우는 일이 당연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걷는 이를 보면 짐을 덜어주려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살다보면 이 당연한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감정의 군더더기가 없어야하고 어쩌면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생각도 단순한 편이 낫다. 상대를 안다는 생각은 하소연도 외면하게 만들고, 덜 아문 상처나 해결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으면 스스로 초라해질 만큼 손 한 번 내밀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럴 땐 마음 속 진짜 이유를 잘 들여다보고 나를 다독여주는 일이 먼저일 수 있다. 군중들이 꾸역꾸역 집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