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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2,1-11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왜 환난이 없을까 본문

마르코의 우물/마르코 2장

마르 2,1-11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왜 환난이 없을까

하나 뿐인 마음 2022. 1. 15. 10:11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마르 2,4)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왜 환난이 없을까. 복음을 묵상하며 들것에 중풍병자를 눕히고 예수님께로 나선 이들을 가만히 따라가 보았다.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기 위해 그들은 몇 번의 좌절을 맛봐야 했을까. 힘들여 들것을 들어야 했고, 군중에게 가로막혔고, 사람을 실은 들것을 들고 지붕을 올라야 했고, 막힌 지붕도 뚫어야 했고, 예수님 앞에 내려보내기까지 해야 했다. 조금만 힘을 들이면 되는 일도 아니었고, 가로막힐 일이 없지도 않았고, 단숨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 기도가 그렇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나. 우여곡절 없이 어떻게 깊은 기도가 되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겪는 아픔과 슬픔을 나눠지지 않으면서 기도한다면 그게 기도일 수 있나...

어제 아침에만 하더라도 들것에 실려 내려지는 사람이 아니라, 은총이 필요한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내는 사람으로 잘 살자는 묵상을 했는데 하루 내내 말씀을 되새기다 보니, 내가 지금 하기 싫어하는 기도가 무엇이었는지가 선명해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마르 2,16)라는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의 말이 근래 나의 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예수님, 당신은 어째서 하필 저 사람과 함께 계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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