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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프랑수아 모리아크. 정수민 옮김. 가톨릭출판사. 신앙 고백이자 사랑 고백이었다. 이토록 찾고, 이토록 그리워하고, 이토록 찾는 마음. 하나하나 더듬어보며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래서 삶에 아로새기는 사랑. 제목처럼, 이 책은 정말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였다. p.106 "유다는 스승의 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p.117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 이는 자신이 이를 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뜻을 어긴다. 완벽하게 길을 가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나 혹은 그렇다고 믿는 이들의 오만함은 세상 사람들의 허영심을 훨씬 능가한다." p.119 ~ p.12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셨다."(루카 7..
최진영. 한겨레출판. 몇 겁을 살아온 듯 아이는 단단했다. 겉으론 아이가 부서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럴수록 부서지는 것은 우리요, 우리의 세상. 작가의, 아이의 솔직함이 무시무시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진짜였는데 가짜로 사는 이들이 부르지 못해서 계속 가짜로 산다.
최은영. 문학동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선산을 지탱하는 굽은 나무들의 이야기였다. 그 모든 것을 온 몸에 아로새긴 탓에 부서지고 휘었지만 끝까지 지켜내는 이야기. 그리고 그 휜 나무들의 말. 결국 세상을 지켜내는 말. 결국 세상을 살려내는 태도.p.24 ""앞서 얘기한 학생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죠. 그것도 말을 끊어가면서."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웃음기가 걷힌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p.28 "그녀가 지적할 수 없는 부분에서 은근하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상대는 이런 지식을 알지 못하리라고 확신하듯 '~거든요'라는 종결어미를 즐겨 썼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p.31 ~ p.32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
이지현. 사계절.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나는 있어요.제목을 읽었음에도 그림책을 넘기며 목화꽃 정원에 사는 사랑스러운 요정들의 이야기인가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책이었다. 하지만 클로즈업된 아이들의 우음기 하나 없는 무표정한 얼굴. 상처투성이 손가락들. 상처에 감긴 붕대와 붕대만큼 낡아가는 아이들의 삶. 날개는 부서지고 떨어지고,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다가 어느새 없다. 분명 없지 않은데 보이지 않으니, 볼 마음이 없으니, 아이들은 없다. 있지만 … 환경을 지키는 노력을 하며 편리하고 값싼 플라스틱 제품들을 멀리하고 면 제품을 골랐다. 하지만 이 수요가 급증하는 질 좋은 면을 빨리, 많이 공급하기 위해 목화를 다치지 않고 딸 수 있는 작고 고운 손을 가진 아이들이, 다쳐가며 웃음을 잃어가며 값싸고 다..
박서련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에 대한 이야기. 체공이란 단어를 반가워하게 된 건 배구를 좋아하면서부터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를 두고 어떤 해설위원이 신장도 좋은데 체공력까지 좋아서 공중에 오래 머물면서 블로킹을 잡아내는 선수라고 했기 때문이다. 타임 아웃에서 '체공력 좋은 희진이 앞에서 때리면 어떡하냐'는 상대편 감독의 불만 가득한 지시?를 듣고 나서도 이 단어가 좋았다. 그런데 이 단어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공중에(滯) 머물러(空) 있는 여성(女)' 강주룡. 이젠 마냥 반갑기만 한 단어는 아니게 되었지만 늦기 전에 이 책을 만나, 나도 좀 더 버틸 힘을 내어 보자는 결심을 또 한 번 했으니 책에도, 박서련 작가에게도, 을밀대 지붕 위에 ..
하미나 지음. 동아시아. 이해받지 못했던 여성 우울증에 관한, 작가의 개인 체험과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용기 있는 이들의 인터뷰로 엮어진 책. 말할 용기를 북돋고, 스스로 용기를 내고, 들어주고, 들려주는 이 다정하고 절박한 행위가 얼마나 우리들을 살게 하는지... 때론 이들이 겪은 우울에 공감하기도 하고, 돌보는 사람의 입장이 되기도 하면서 많이 아파하며 읽었다. 나 역시 설명할 길이 없고 빠져나올 수도 없던 그 짙은 어둠의 시간을 겪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잠시라도 멈춰지기만을 바라며 숨만 겨우 쉬던 때, 내가 시작한 적도 없는 그 시간을 내가 마칠 수도 없었던 , 내 인생에 내가 없던 절멸의 시간을 통과한 것은 끝까지 내 곁을 지켜낸 이들 덕분이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런 저런 생각 끝에 ..
앤 카슨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읽기는 자유낙하가 될 수 있다. 푸른 바다의 눈부신 파도처럼 밀려와 각각이 내게 닿았는데 금새 낱낱의 빛깔이 투명하게 부서졌다. 앤 카슨이 발표한 시, 산문, 비평, 강연록 등의 모음인데 너무 읽고 싶은 앤 카슨의 글이었지만 내겐 솔직히, 많이 어려웠다. 한 권으로 묶였다기보다는 각 권을 한 상자에 모아놨다고나 할까. 아니면 각각의 소책자가 글이라기 보다는 글자 혹은 낱말 같았다고나 할까. 굳이 설명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 낱말. 통째로 낯설기만한 이국의 낱말. 그저 한 음절의 글자. 알듯 하면서도 어렴풋하기만 한 낱말. 아는 단어이지만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낱말... 책의 내용보다는 시인 앤 카슨, 고전학자 앤 카슨, 번역가 앤 카슨의..
트레시 맥밀런 코텀 지음. 김희정 옮김. 위고. 새해 첫 책. 누군가는 사지 않을 여유가 없을 수 있단 말에 정초부터 나는 또 깨어졌다.p.24 "나는 평생 내 발을 고치며 살았다. 한번도 정상적으로 걸어본 적은 없지만 비뚤게 걷지도 않는다." p.34 ~ p.35 "내 발을 고친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얻는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더라도 상관없이 계속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나 자신을 고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엄청난 아픔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세상이 나를 보는 시각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p.183 "왜 우리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물었던 것 같다. 위대한 비비언은 진주 귀걸이를 차면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