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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플로트 본문
앤 카슨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읽기는 자유낙하가 될 수 있다.
푸른 바다의 눈부신 파도처럼 밀려와 각각이 내게 닿았는데 금새 낱낱의 빛깔이 투명하게 부서졌다.
앤 카슨이 발표한 시, 산문, 비평, 강연록 등의 모음인데 너무 읽고 싶은 앤 카슨의 글이었지만 내겐 솔직히, 많이 어려웠다. 한 권으로 묶였다기보다는 각 권을 한 상자에 모아놨다고나 할까. 아니면 각각의 소책자가 글이라기 보다는 글자 혹은 낱말 같았다고나 할까. 굳이 설명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 낱말. 통째로 낯설기만한 이국의 낱말. 그저 한 음절의 글자. 알듯 하면서도 어렴풋하기만 한 낱말. 아는 단어이지만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낱말...
책의 내용보다는 시인 앤 카슨, 고전학자 앤 카슨, 번역가 앤 카슨의 고뇌가, 애닮픔이, 환희가, 절망이, 안도가 더 와닿았다면 어설픈 독자의 서툰 변명일까. 그래서 더우기 내용만큼 번역 자체에, 혹은 그 시도 자체에, 활자화 된 생각 자체에도 의미가 있달까. 그래서 읽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하달까. 뭔 소린지 나도 모르겠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의 저녁에 태어나, 아침과 오후를 기억하면서도 그걸 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이미 멀리 어둠 속에 가 있다. - ‘넬리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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