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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이재근 지음. 바오로딸. 오랜만에 맘편하게 웃으며 읽은 책. 신부님 글을 읽으며 근래의 내 삶을 다시 돌아봤는데, '그래, 이것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던 내게 가벼운 하이파이브 같았던 책이다. 언니 수녀님이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잠시 분원을 떠나고 우리 수녀원에는 비상이 걸렸다. 비상이라는 단어가 호들갑 같기도 하지만, 덩치 큰 분원의 집안일과 본당의 빈 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내 기도와 각오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지쳐갔다. 수녀원과 성당 빈자리를 오가며 살피다보니 두 달 가까이 책을 한 줄도 읽지 못했다. 가벼운 동화책도 읽을 여유가 없었으니 내 인생 5세 이후로 처음 맞는 엄청난 독서 공백기였다. 평소에는 바빠서 책을 못 읽더라도 혹시나 쪽짬이 생기면 읽으려고 늘 들고는 다녔는데 근래는 아예 그..
메리 올리버.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천천히 걸으며 세상을 음미하다가여전히 천천히 우리를 스쳐 영원의 길로 간다. 진실로, 우리는 너무도 불가사의하여 도무지 풀 수가 없는 수수께끼들과 더불어 살지.어떻게 풀은 어린양들 입속에서 자양분이 될 수 있는지.우리는 위로 오르기를 꿈꾸는데어떻게 강들과 돌들은 영원히 중력에 충실한지.어떻게 두 손이 맞닿으면 그 유대가 절대로 깨지지 않는지.어떻게 사람들은 기쁨을 얻기 위해, 혹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시의 위안을 찾아오는지.자신이 답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과는 늘 거리를 두고 싶어."봐!"라고 말하며 경이의 웃음 터뜨리고 고개 숙이는 사람들, 늘 그런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정통 추리소설의 정수라는데, 내겐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얽혀있는 건 아닌가 싶었던 책이다. 어렵다기보다는 복잡해서 오히려 더디게 읽게 된달까. 하지만, 나같은 사람은 따라가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재미는 있다. 파헤치는 이들의 끈질김만큼 범죄를 저지르고 탐하는 사람들의 집요함도 대단했다. 너무나도 기발하신 히가시노 게이코^^
강지나 지음. 돌베개 10년에 걸쳐 작성된, 가난을 짊어진 아이들의 성장 기록. 이 책은 실상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니 우리가 그저 ‘돈’, ‘도움’이라고 쉽게 말하거나 탓하지 못하게 만든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던져야 할 단 하나의 물음이 담긴 책’이라는 은유 작가의 소개말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는데, 당장 내 발 밑에 구멍이 뚫리진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무너지고 있음을 알아채고, 아이들 아래 뚫린 구멍에 눈을 돌리는 일이 이젠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니라 ‘나의, 우리의 일’이라는 걸 다시 알려준다. p.0 "공정한 어떤 잣대로 재봐도 미국 최고의 아동살인범은 가난이다. - 테리사 푸니시엘로(미국 복지권리운동 조직가)" p.38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아마티아센은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단편집이라 생각 없이 펼쳐서 스토리의 흐름에 떠밀려 좀 읽다가 “어..?”하다가 끝나는 이야기들. 누구는 책을 덮자마자 인간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는데 난 오히려 씁쓸함이 밀려왔다.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어둠. 그 어둠을 스스로 더욱 짙고 깊게 만드는 인간들, 인간들… 이 작가의 책을 읽을수록, 흡입력이 아주 좋으면서도 재밌게만 읽히지 않는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장점 중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죄를 짓는 사람이나 속고 속는 사람이나 사건을 풀어나가는 사람들 모두 흔히 말하는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이 작가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 같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하빌리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나오는 세상이 좋다.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럭저럭 보통인 사람들, 혹은 자신의 삶에 열심인 사람들이 해결해 나가는 세상. 지고한 선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선으로 다가가려고 애써보는 사람들의 세상. 복고풍이 아니라 실제로 1988년 작품인데, 번역은 30년도 넘게 지난 현대어여서 (그 차이가 좀 궁금하긴 했는데) 오히려 명랑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하루키 시리즈는 언젠가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 멈췄는데 게이고 소설은 가능한 오래도록 하나하나 다 읽고 싶다.
프랑수아 모리아크. 정수민 옮김. 가톨릭출판사. 신앙 고백이자 사랑 고백이었다. 이토록 찾고, 이토록 그리워하고, 이토록 찾는 마음. 하나하나 더듬어보며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래서 삶에 아로새기는 사랑. 제목처럼, 이 책은 정말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였다. p.106 "유다는 스승의 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p.117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 이는 자신이 이를 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뜻을 어긴다. 완벽하게 길을 가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나 혹은 그렇다고 믿는 이들의 오만함은 세상 사람들의 허영심을 훨씬 능가한다." p.119 ~ p.12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셨다."(루카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