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본문

雜食性 人間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하나 뿐인 마음 2024. 2. 27. 13:37

프랑수아 모리아크. 정수민 옮김. 가톨릭출판사.

신앙 고백이자 사랑 고백이었다.
이토록 찾고, 이토록 그리워하고, 이토록 찾는 마음.
하나하나 더듬어보며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래서 삶에 아로새기는 사랑.

제목처럼, 이 책은 정말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였다.


p.106
"유다는 스승의 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p.117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 이는 자신이 이를 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뜻을 어긴다. 완벽하게 길을 가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나 혹은 그렇다고 믿는 이들의 오만함은 세상 사람들의 허영심을 훨씬 능가한다."

p.119 ~ p.12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셨다."(루카 7.9) 예수는 사람들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예수가 감탄한 이들은 대단한 미덕을 지녔거나, 특별히 엄격하게 사는 이도, 또 위대한 지식을 지닌 이도 아니었다. 예수는 은총에 은총을 더한 영적 통찰력의 결실인 항복, 패배, 절멸의 상태에 놓인 이들, 겸손한 태도로 다른 이들에게 양보하는 이에게 감탄하였다. 이는 의지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겸허함이었다. 이런 겸허함은 자신을 모르는 조건에서만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가슴을 치는 행위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p.149
"하느을 믿는다는 것은 오직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지만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보다 더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p.160
"그리스도가 지친 군중을 불쌍히 여긴 바로 그 순간에 전한 말씀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분명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명의 남자와 여자, 어린이 가운데 어느 누구도 들판에 내려앉은 어둠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p.180
"어쩌면 이때 예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유다를 바라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일단 온 세상을 얻기만 하면 언제고 영혼을 구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영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p.180
"숨결에 불과한 우리의 영혼, 그저 바람일 뿐인 영혼을 얻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이것은 사두가이의 의견이다)? 세상을 잃는다면 영혼을 얻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195
"예수는 구원을 위해 이곳에 왔지만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마음의 부르짖음, 하느님의 승부가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마음에서 온 외침, 예수는 그 외침을 자신이 정복하지 못한 도시들 앞에서 던질 것이다. 그들을 둘러싼 사랑이 일어섰다 물러갔다. 피조물이 하느님의 갈망을 거부할 수 있는 이 능력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은총은 그곳에서 엄청난 패배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p.210 ~ p.211
"사람의 아들은 이 불행한 여인이 두려움보다는 수치심 때문에 실신하기 직전임을 알고서 그를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피조물의 삶에서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위대한 자비인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죄인을 향한 그리스도의 모든 사랑은 이 감춰진 시선 안에 담겨 있다. 그리거 예수가 땅에 적은 숫자들은 이 불쌍한 육신을 올려다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p.247
"예수가 그들 가운데 머물렀던 이유는 겸손이나 희생정신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을 선택했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증오한 예수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준 것이다."

p.249 ~ p.250
"불공평한 자비!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걸 걸었지만 실패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신을 맡기는 이는 바르고 점잖은 이들보다 더 앞설 때가 있다. 단정한 이들은 자신들이 날마다 한 땀 한 땀 완성하는 완전함에 비난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되찾은 아이의 탄식을 듣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맛보는 즐거움을 짐작하지 못했다."

p.250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 예수는 그 모든 것보다 항복하는 마음을 선택하신다. 길을 불태우고 비참함이 극에 달한 채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온 그 마음! 문자 그대로 전멸하여 인간의 정의에 따르면 사형 집행인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자비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마음을 더욱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p.261
"사랑은 사랑하는 이가 자유롭게 동의한 것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얻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청년은 강제로 빼앗기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게 아니었나? 어쩌면 사람의 아들은 청년에게서 마음이 자발적으로 이끄는 대로 행동하여 도약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2)"

p.296
"즐길 것을 다 즐기고 누릴 것을 다 누린 뒤에 드리는 현금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아무것도 바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雜食性 人間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0) 2024.03.21
11문자 살인사건  (0) 2024.02.28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들의 이름은  (0) 2024.02.18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2024.02.18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  (0) 2024.02.1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