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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유쾌하게 설레게 본문
이재근 지음. 바오로딸.
오랜만에 맘편하게 웃으며 읽은 책. 신부님 글을 읽으며 근래의 내 삶을 다시 돌아봤는데, '그래, 이것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던 내게 가벼운 하이파이브 같았던 책이다.
언니 수녀님이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잠시 분원을 떠나고 우리 수녀원에는 비상이 걸렸다. 비상이라는 단어가 호들갑 같기도 하지만, 덩치 큰 분원의 집안일과 본당의 빈 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내 기도와 각오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지쳐갔다. 수녀원과 성당 빈자리를 오가며 살피다보니 두 달 가까이 책을 한 줄도 읽지 못했다. 가벼운 동화책도 읽을 여유가 없었으니 내 인생 5세 이후로 처음 맞는 엄청난 독서 공백기였다. 평소에는 바빠서 책을 못 읽더라도 혹시나 쪽짬이 생기면 읽으려고 늘 들고는 다녔는데 근래는 아예 그럴 수 없다는 걸 확신한 것처럼 아예 갖고 다니지도 않았다. 조바심, 답답함 같은 감정이 밀려와 처음에는 우울하기도 하고 힘도 들었지만 이것도 기도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틴 시간만큼 조금씩 적응도 되었다. 그래서인가, 성당 구석구석을 오가며 인사만 겨우 나누던 분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도 나누고 투정도 듣고 농담도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안부도 묻고 차도 한 잔씩 하다보니, 조용하면서도 빡빡한 본당 일들이 '그래도 괜찮다' 싶었다. 수녀원 일도 마찬가지였다. 분리수거, 냉장고 정리, 밑반찬 만들기, 장보기, 구석진 곳 치우기 등등이나 고장난 곳 살피고 필요한 것들 채워가는 일들이 처음에는 고단하기도 했는데 조용히 빈자리를 살피며 다른 수녀님들 일상이 구멍나지 않게 보살피는 이 고단함 역시 '그래도 괜찮다' 싶었다. 하는 일이 내 수도삶을 규정짓지 않는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뒤쳐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나도 모르게 계속 하면서 살았는데, 누군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채웠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들을 하고 시간을 내고 공을 들이는 이 단조로운 고단함으로, 거창하고 멋져보이는 일은 아니더라도 소소하고 다정한 일들에 나 자신을 끊임없이 내어놓는 이 작은 희생으로 내 수도삶의 뒷부분을 채워나가도 '꽤 괜찮겠다' 싶다. 내 이런 생각에 <유쾌하게 설레게> 응원을 보내온, 이 책을 쓰신 분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유쾌한 기도를 바치고 자야겠다, 물론 기도는 짧고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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