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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4/11 (7)
깊이에의 강요
김지승 에세이. 낮은산. 맞추지 않아도 좋을 퍼즐 하나 선물 받은 기분이다. 퍼즐 조각 하나하나가 다 옳다. 모아놓으면 그대로 아름다울 테지만 흩어지면 흩어진대로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유일하다. 기억 속에서 제 스스로 충분한 조각들을 그저 조각 자체로 품으며 살고 싶다. 때때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몇 개씩만 이어 붙여 보면서…p.44""제가 살던 곳에서는 연속 술래는 안 되고, 나무에 손을 대고 있는 사람은 술래가 잡지 못했어요.""p.45"돌아가며 술래를 하는 것. 내게는 그게 수건돌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룰이었다."p.123""아픈 사람을 누가 좋아해…… 힘들다는 호소를 누가 계속 듣고 싶어 하겠어?""p.133"나는 끝까지 묻지 않았다. 배려라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아프게 저지르는 배반..
안젤름 그륀 지음. 김선태 옮김. 생활성서. 수련소 시절 이 책을 읽었는데 20여 년이 흘러 다시 읽으니,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책이 신드롬처럼 번지던 그때가 생각났다. 더불어 내 안에서 일던 저항감도 함께. 다행인 것은 그동안 내가 좀 더 여물었는지, 택할 것은 잘 택하고 덜 영향을 받아도 된다 싶은 것은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사선택에 있어서 마음이 자유롭다. cpe도 하고 있고, 알랭 드 보통의 책(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과 연달아 읽어서이겠지만 요 몇달 간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했다. 잊고 사는가 싶어 가끔 미안하던 부모님 생각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니 부모님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가 싶기도 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나를 돌아보며 ..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환자 심리에 관한 강의에서 추천해 주신 책인데, 처음에는 어쩌다가 내가 이제서야 이걸 읽었을까 싶다가,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읽는 것이 얼마나 더 다행인가 싶을 정도로 잘 읽었다 싶은 책. 알랭 드 보통의 책도 오랜만이지만('뉴스의 시대' 이후 처음이다.), 뭐랄까 여태까지의 직관적이고도 단순 명료한 제목에 비해 이 제목은 어떤 식으로든 '낚지 않겠다(=속이지 않겠다)'가 느껴진달까. 읽고 나니, '낚지 않겠다'는 이 의도 가득한 제목은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결혼이라는(혹은 인생이라는) 현실에 있어 아주 중요한 주제였다. 다리도 다친 상태라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마음이 이래저래 약해져 있는 상태라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다독일 필요까지 있던 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루카 18,41)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제는 시력보다 시선을 되찾고 싶다. 내 시력만 믿고 이것저것 다 쳐다보고 제대로 본 것이리라 확신하며 살기보다, 선한 시선을 보내고 따뜻한 시선으로 살피고 상대를 위해 때론 시선을 거둘 줄도 아는. 오랜 만에 카드 만드느라 색연필을 깎다가 깎여나간 부스러기들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싶었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루카 17,31) 옥상에 있으면서도 세간을 갖추려 하고, 드넓은 들판에 서서 미련을 품어서야 되겠나. 지금에 충실하고 지난 것은 흘려보내자. 아파서만이 아니라, 내 삶은 어쩌면 종말을 사는, 매일매일이 ‘그날’인 삶인데, 어찌 그리 갖추려 들었나. 광활한 자유 안에 있으면서도 자꾸 뒤돌아 보았나… 아픈 다리 끌어 안고 나를 돌아본다.
원1: (멋쩍게 웃으며) 안녕하세요?환1: 네, 안녕하세요? 원2: 다리는 좀 어떤가요? 불편하고 많이 아프시지요? 환2: 부러진 곳은 아직도 욱신거려요.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또 다리를 올려두고 좀 쉬려고 해요. 처음이 아니라서 불편한 일들을 해결하는 건 예전처럼 막막하진 않은데, 해야 할 일들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마냥 받아야 하는 도움도 많으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답답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 거 같아요. 원3: 주로 어떤 것들이 답답한가요? 환3: (생각하는 듯) 서로의 처지가 다르니 거기에서 오는 ‘거리감’ 같은 게 힘들어요. 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어려워하거든요. 어쩔 수 없을 때 슬프고 외로운데 이 거리감도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서요. 말을 하자니 내가 ..
김소윤 장편소설. 은행나무. 그동안 꼭 한번 봉헌된 정난주 성당을 보고 싶었는데 이번 성지순례 때 다녀왔다. 그곳 신부님으로부터 이 책을 받았고, 가슴에 품은 채 대정성지를 방문해 그 묘 앞에서 기도를 바쳤다. 다리를 또 다쳤다. 무척 좋았던 성지순례지만, 밤 열시가 넘어 도착해서 고단한 몸으로 잠마저 부족한 채로 새벽미사를 나가다가 계단을 헛디뎠다. 아찔한 두려움은 잠시, 아,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 도대체 몇 번째 골절인지. 며칠 동안 도저히 끝이 안 난다는 생각에 머리도 마음도 너무 복잡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책을 집었지만 집중이 잘 안돼서 짧게 끊어가며 정난주 마리아의 삶을 따라갔다. 읽을 때보다 사이사이 여운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은 시간을 채웠다. 정난주를 끝까지 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