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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 (217)
깊이에의 강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당신께서는 이름도 성격도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같은' 사명을 주십니다. 가끔은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살도록 부르셨나, 아픈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입회식 때마다 부르는 노래, "우리는 왔네. 서로 다른 길을 지나,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의 먼 길을 왔네, 주님이 이를 바라셨도다. 한 곳에 부르시고, 자녀되라 하시네, 내 집을 사랑하라 내 집은 평화로다."를 흥얼거려 봅니다. 고음의 흔쾌한 멜로디지만 이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 붉힌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습니까. 목적(사명)..
(트위터 '묵음'님의 사진)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2-13절)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냐 마땅하지 않느냐를 판단한 후 평화를 빌어주는 것이 아니라, 일단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빌어주라는 말씀. 평화를 빌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전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나면 제 자신도 아주 쉽게 이기적으로 변해버립니다. 굳이 친절을 베풀거나 양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나의 딱딱한 태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매번 내가 양보할 필요가 있나, 도와줘봤자 고마운 줄도 모를텐데, 절실한 순간을 겪어봐야 본인도 깨닫는 바가 있을 거 아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을 천천히 읽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의회에 넘기고 채찍질하던 나를, 누군가를 눈 앞에 끌어와 세웠던 나를, 형제를 넘겨 죽게 할 형제였던 나를, 자식을 그렇게 할 아버지였던 나를,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자식인 나를,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다른 이를 미워한 나를 ... 반대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나를 두둔하려는 인생을 사십 년 넘게 살았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행여나 또 생각지도 못한 내 모습을 깨달을 때 절 미워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때의 나에게도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려 주십시오. 그때의 나에게도 내 안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들. 율법 학자들. 무엇보다 중풍 병자. 그리고 예수님 당신.치유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사람들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속시원히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율법학자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당신의 이 말씀에서 어떻게 '신성모독'을 끄집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 어마어마한 권력(적어도 그들에게는 구원도 사랑도 아닌 권력이죠.)을 근본도 없는 이 남루한 자가 멋대로 휘두르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걸테지요. 어느 쪽이 더 쉬우냐(easier)? 그들에겐 병을 낫게 해주는 것도 죄를 용서해주는 것도 절대로 맘이 편하지(easy) 않았을 겁니다. 네, 결국 어느 쪽..
하루종일 복음을 곱씹었지만 묵상은 진척이 없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성당에 앉아 읽고 또 읽고 눈감고 묵상하려 했지만 도무지 아래로 내려가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실마리가 잡히는 듯 하다가도 이내 흔적도 없고 그저 텅 빈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기도가 이렇게 힘들다. 사실 마음이 힘든거지. 마지막이다 싶어 내 방 책상에 앉아 또 성경을 펼쳤다. 촛불을 켜고 앉아 되든 안되든 삼십분은 버텨보겠다는 악다구니. 이제 성경을 덮으려는 찰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듯 하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왜 이리들이 양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겉과 속. 보이는 모습과 실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굳이 양의 옷차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이리의 모습으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는 걸 아는 자만이 양의 옷차림을 하는 건 아닐까. 자신이 이리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양의 옷차림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나쁜 나무는 왜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건가... 이런 질문이 꼬리를 잇는 걸 보면 요새 내가 불만이 많은가 보다.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 7,13) 묵상 중에 좁은 문을 상상해 봤다. 멸망으로 이끈다는 넓은 문과 널찍한 길도 상상해 봤다. 그러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보스톤으로 떠났던 피정 마지막 날, 엘에이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어중간한 오후 시간이라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은 곳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머물던 호수였다. 그가 낚시를 했다던 호수와 그가 살던 집을 돌아보며 걷던 그날 오후. 우리는 생각보다 넓은 호수와 숲(기차길도 지나갈만큼 큰 숲이었다)에 놀랐고 생각보다 더 좁은 방에 또 한번 놀랐었다. 하지만 그 넓은 숲길을 함께 걷다보니 가끔은 어깨가 부딪히기도 했고 나지막한 혼잣말도 서로 들을 수 있었다. 둘셋 따로 걸었다면 널찍한 길이었겠지만, 다섯이 굳이 함께 걸으려다보니 오히려 ..
마음을 모아 청하기만 한다면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 말씀을 천천히 곱씹어보면 그저 간절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요, 아버지께서 들어주시는 이유가 예수와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이나 셋이 마음을 모아서 청하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 예수와 함께 있다는 건 조금 불편한 일이다. 간절하게 구하고 싶은 일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예수의 이름이 끼어드는 순간 기도의 방향이 바뀌어야 할 '간절함'도 많기 때문이다. 나에게 죄를 지은 형제와 내가 함께 있으면 이미 우리는 둘이다. 우리 둘 사이에 예수가 있다면 그 이름은 '용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