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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달력 한 장 (145)
깊이에의 강요
믹 잭슨 글. 존 브로들리 그림. 김지은 옮김. 봄볕. 언젠가 아주 늦은 밤 210번 도로를 두 시간 넘게 달린 적이 있다. 빅베어에서 캠프 중인 아이들에게 고기를 배달해주고 아픈 아이를 태워 다시 엘에이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밤이 꽤나 깊었는데도 그 넓은 도로에 나만 달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그 도로에서 내 옆으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많이 차들이 지나갔다. 슬쩍 곁눈질로만 봐도 대부분 고단한 몸을 차에 싣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차들이었다. 이런 밤도 있구나 싶었던 그날, 많은 이들이 잠들었을 그날 의 그 깊은 밤이 생각났다. 이 책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을 보여준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가 잠든 사이에도 시계 바늘이 멈추지 않도록 정확하고 ..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 지음. 이원경 옮김. 밝은미래. 농담처럼 여름이니까 납량특집 하나 읽어야지 하면서 집어든 책. 책을 덮고 나니 뒷다리 한 쪽이 보이지 않는 미야와 오른쪽 앞다리가 짧은 미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귀여운 오싹함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어린 여우가 헤쳐나갈 세상이 가볍거나 만만하진 않았다. 자기 깜냥을 안다는 건 이런 것일까. 두려워서 덜덜 떨면서도,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도, 힘들고 외로워 엉엉 울면서도,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이 가야할 길을 헤쳐나간다. 이야기가 정말 그럼직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우애 좋은 형제들, 인자한 아빠, 선한 이웃… 등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없거나 변해버린 것에 매달리기보다 스스로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간 미아와 율리. 이..
이현 장편동화. 오윤화 그림. 창비. 요즘 읽었던 책들이 주로 그랬지만, 와니니 3권은 특히나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들만이 아니라 혼자서 살아가는 동물도 초원에서는 ‘함께’ 산다. 서로를 도와야만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와니니 이야기. 빌려간 동생 수녀님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빌려주고 도서관에서 1,2권을 빌려 새로 시작하게 만들면서 나한텐 아주 나중에 돌아왔지만, 와니니 3권을 덮고 나니 오래 기다려 줄 줄 아는 것도 ‘함께 사는’ 일이란 걸 알겠더라. 더불어, 좋은 책을 나눌 줄 아는 것도 함께 사는 방법이겠지. 먼저 받았으니 기꺼이 내놓을 줄 아는 자세,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를 희생하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 푸른..
클로에 바리 지음. 이민경 옮김. 우리학교. 솔직한 그림과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당장은 결과를 바꿀 수야 없다 해도, 남자팀과 겨눠서 끝까지 경기를 마치고 당당하게 4:0으로 승리한 여자 축구부 이야기. 날씬하고 예쁜 모습만으로 그려지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고, 승리가 전부가 아니라 해도 승리를 갈망할 줄 알고, 눈물을 닦으면서도 달릴 줄 아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엔, 좀 더 다른 결과의 이야기도 당연하다 생각되리라. 내가 지나온 시간은 좀 달랐지만 지금을 사는 아이들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더 나아가길 바란다.
강경수. 창비. 이럴 줄 몰랐다. 이 동화를 읽은 나만의 심정은 아니었을테다. 북극곰 눈보라의 심정도 이렇지 않았을까. ‘이럴 줄 몰랐어…’ “이 못된 북극곰!”이라고 마을 어른들이 외쳤을 때 내 안에서는 평소에도 수도 없이 떠오르는 질문이 실제로 소리가 되어 튀어 나왔다. “도대체 근거가 뭔데!” 근거가 빈약하거나 근거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나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자주 그러고 살았겠나 싶어 입을 다물게 된다.
비올렌 르루아 글, 그림. 이경혜 옮김. 곰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산꼭대기의 신비로운 마을. 마을에 대해 떠돌던 숱한 이야기를 사실이라 믿으며 자란 ‘나’는 저절로 산꼭대기를 향하게 되었고, 오를수록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던 신비로운 마을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산을 올랐다. 저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눈 덮인 산을 오르는 ‘나’를 보며 아기 때 세례를 받고 내 삶을 둘러싼 그 숱한 이야기들을 믿으며 자라 자연스럽게, 또는 나도 모르게 신비로운 ‘영원’을 향해 걸어간 또 다른 ‘나’를 생각했다. 나 역시 "몰아치는 눈보라에 휩쓸려 가기도 하고, 살을 에는 칼바람에 발이 묶이기도 했다." 길을 잃었구나 싶을 때 발견한, 내 손 안에 들어온 작은 돌 하나... 마침내 그들을 보았고, 그들을 따라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