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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조미자 지음. 핑거. 자신의 리듬을 잘 알고 그 리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어떤 날은 빠르게, 또 어떤 날은 조금 느리게, 누군가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용기가 난다. 내가 딛고 선 길, 내가 디디며 나아갈 길, 어둡고 아늑한 혼자만의 공간까지. 다쳐서 생긴 빈 공간을 메우려고 너무 아등바등 했구나, 싶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은채 다친 날 위로하려고 누군가 보내준 문자를 생각해냈다. 수녀님, 느린 천사로 살고 계시는지요... 그래, 느린 천사로 살 줄도 알아야겠지. 그게 지금 나의 리듬.
김윤이 지음. 한울림어린이. 내가 곧잘 숨어들던 수녀원 모과 나무 그늘이 생각났다. 밑줄기가 작지만 수관폭이 넓고 잔가지가 적어서 동굴처럼 나무 안으로 쑥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넓은 정원에서도 그 모과 나무 그늘은 작고 아늑했다. 그곳을 부러 찾아간 아이의 기분도 알 거 같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에 따라 아이의 생각이 뻗어가고 기분이 달라지는 것도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무엇보다 그곳을 빠져나와 ‘돌아가는’ 마음도 알겠고.
오소리 글, 그림. 이야기꽃. “‘나도 신부가 되어야겠어!’ 소녀는 모험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신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노 하나로는 갈 수 없다는 말에, 절대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에, 모두가 부러워할 거라는 말에 “이건 아니야.”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 짝을 짓지 않아도 나의 ‘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많다는 걸 이 소녀를 통해 본다.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의 삶을 통해서도 보고 싶다. 친구 딸래미에게 선물하고 싶은 좋은 이야기가 또 생겼어.
M. B. 고프스타인 그림책. 이수지 옮김. 창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바깥에 외롭게 서 있는 눈사람을 생각하며 “저 눈사람 만들지 말 걸.”하고 말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 그리고 결국 따뜻한 외투를 걸쳐 입는 행동. 이 마음과 행동은 “이제 우리 눈사람도 둘이 함께 있는 거야.”하고 동생이 말할 수 있게 한다.
데이브 에거스 글. 숀 해리스 그림. 김지은 옮김. 이신에 해설. 이마주.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는, “시민은 이 사회에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결코 잊지 않는 사람이에요.” 함께 살기에 함께 만들어 간다는 걸 잊지 않는 것. 그래서 아니라는 것도 말해야 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도 보고 들어야 하고, 귀찮더라도 의견을 가져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M. B. 고프스타인 그림책. 이수지 옮김. 창비. 바람의 이름, 구름의 이름... 세상 모든 이름을 알고 싶은 이유는 바로 이것. “모두를 하나하나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따뜻하게 맞아주고 싶어.” ‘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기쁘게 해 줄 수도 있고, 얕잡아 보며 우쭐거릴 수도 있다. 2-3년에 한 번씩 성당을 옮기며 제일 열심히 하는 일이 바로 이름을 익히는 일이다. 내가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일처럼 여겨져 조금 어렵지만 그 모두가 내게 왔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반가운 손님을 맞듯 선물 같은 이름을 외우게 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언제 어디서든 나의 ‘앎’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기쁜 선물이 되길 ...
맷 마이어스 그림책. 김지은 옮김. 창비. “제이미가 흠흠흠, 노래를 부르면 파도가 다가와요. 차르르르르.” 제이미와 바다는 친구다. 사람들은 오가며 제이미에게 저마다 하고 싶은 말로 말을 걸지만, 친구 제이미와 바다의 대화는 흠흠흠 차르르, 때론 차르르 흠흠흠. 제이미와 바다와 할머니도 친구다. 흐음 흠흠흠, 차르르르르, 찰랑! 내 삶이 이 삶인지라,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누군가 피리를 분다면 춤으로 어울리는, 누군가 곡을 하면 가슴을 치며 곁을 지키는 사이. 상대와 무관하게 그냥 내가 하고픈 말로, 내가 아는 지식을 나열하는 말로, 그저 내가 알고 싶은 질문으로 대화라는 걸 이어가다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