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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0/02 (15)
깊이에의 강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오늘은 소금과 빛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함께 우리의 신앙을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1. 소금이나 빛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소금이 선택적으로 일부만 짠 맛을 느끼게 한다거나, 빛이 비추고 싶은 곳만 비추지 않지요. 쉽게 말해보자면, 소금을 넣었는데 감자만 간을 맞춘다거나 촛불이 내가 읽고 있는 책만 비추지 않는다는 겁니다. 가톨릭의 정신(가톨릭이라는 말이 보편되다라는 뜻)도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입니다. 좁은 테두리 안의 사람들에게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두를 위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참 좁게 살아왔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만 잘못된 게 아닙니다. 신자들 우선 장사해주기..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마르 6,24) #dailyreading 행하지 않는 힘에 대해서 묵상한다. 살다보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만나고 주지 말아야 할 것을 주는 사람도 만난다. 그러니 그 사람이 어머니라도 해도, 내가 먼저 청했다 해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행하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잘못이라고 외쳐야 하는 때도 있지만, 악의 순환이 이어지지 않도록 내가 끊어버리는 행동. 그 행동을 나에게서 이어가지 않는 것, 끝까지.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르 6,10-11) #dailyreading 모든 성경 말씀을 하나만 떼어내어 내맘대로 해석하지 말아야겠지만 요즘 내게 이 구절은 특히나 더 그러하다. 몸과 마음 모두 편해지고 나도 모르게 머물고 싶을수록 앞 구절만 기억하고 싶고, 지긋지긋한 시간이 이어지면 뒷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구절을 ‘함께’ 말씀하셨다. 쉽게 안주하지 않도록, 너무 쉽게 남탓하지 않도록...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지 않듯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않아야 한다, 나에겐 때이른 것처럼 보..
가해 주님 봉헌 축일 루카 2,22-40 주님 봉헌 축일은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했음을, 우리 역시 그분께 봉헌되어야 함을, 이미 봉헌되었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아직 완성되기 전의 모습인 아기를 바치는 것은 시작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시작을 바친다는 것은 첫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작고 약하고 소박하지만 순결한 ‘처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처음을 바친다는 말은, 이후 펼쳐질 모든 상황도 바친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처음 먹었던 마음이 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압니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을 만나고 어려움을 겪고 예상치 못한 난관이 우리를 주저앉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 ..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르 6,3) #dailyreading 많은 이들이 가르침을 듣고 놀랐지만 결과는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놀라운 깨달음을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해했지만 '궁금함'에 마음을 열기보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닫았다. 이처럼 어떤 이들에게는 알고 있다는 것, 그곳에서 함께 살아온 일마저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더 노력해 볼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반대하고 배척할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보자. 자칫하면..
정세랑 장편소설. 민음사. 맑다는 건 뭘까. 예전 어떤 신부님이 '눈 맑은 스승이 그립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눈 맑은 스승이 이제 많지 않다는 씁쓸한 말이었을까. 젊은 패기에, 나도 맑은 눈의 수도자가 되고 싶다는 원의를 품었었다. 요즘은 너무 멀리 왔나 싶어 마음이 무너지다가도, 지금이라도 쓸데 없는 것들에서 눈길을 거두고 잠시라도 욕심과 마음의 짐 내려놓고 고요히 눈을 감는 시간을 좀 더 가진다면, 부유물들을 가라앉혀서라도 좀 맑아지지 않을까 또 다른 원의를 품어본다. 이 소설은 독자인 나를 맑은 물로 채워주면서 내가 더 맑아지도록 해준다, 채워서 맑게. 초반에도 마음을 붙드는 구절들이 많았는데, 놓쳤다. 너무 재밌기도 하고 읽을 수록 '나도 이렇게 맑아지고 싶다'는 아이러니한 욕심을 부리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마르 4,38-39) 외부 요인이 잠잠해지기 전까지 안심하지 못하는 제자들. 그들은 자신보다 남을 더 다그친다. 몰아치는 비바람, 흔들리는 배보다 평화로운 예수의 모습에서 더 마음이 부대낀다. 이에 비해 스스로 평정을 유지하는 예수. 무심하다 못해 매정하다 싶을 만큼 그는 스스로 평화로울 줄 알았고 그 평화는 고요했지만 거센 돌풍보다 강렬했다. 바깥에서 찾는 한, 우린 끊임 없이 흔들린다. 나를 흔드는 것도, 내가 화풀이를 하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