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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루카 13,19) 먼저 겨자씨를 가져다가 ‘내 정원’에 심을 것. 사람 사이도 그렇고 사회 생활도 그렇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내 자리를 내어주고 뜻과 방식, 규범 등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를 이어가기가 만만치 않고 공동체에 자리잡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 고된 노동보다 힘들 수 있다. 하느님 나라를 내 안에 받아들이고, 내 안에 자리잡도록 나를 내어놓지 않고서는 내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방도가 없다. 하느님 나라에 영원히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 안에 하느님 나라를 마련해야 하는 법. 그러니 겨자씨를 정원에 심듯, 내 안에서 하느님 뜻이 단단히 뿌리내..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는 말씀을 곰곰이 마음으로 그려보다가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시소가 떠올랐습니다. 시소는 혼자서는 타기도 어렵고 탄다고 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없으면 안됩니다. 신앙생활도, 시소도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개인 기록을 측정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서 즐기는 놀이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시소놀이에서 가장 곤란한 것은 상대방의 호응이 없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올랐으면 상대를 올릴 줄도 알아야 놀이가 되는데, 상대방이 나를 올려주고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매번 평등하고 균등하게 주고받는 사랑이 있겠냐마는, ..
은희경 산문집. 난다.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뭐랄까, 책을 읽다보니 작가님과 은근 친해지는 느낌이랄까, 밥 한 끼 나눈 사이 같달까,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지만 소소한 일로 가끔 멘션을 주고 받는 sns(페북 아님. 인스타 아님) 친구 같달까… 물론 상상만으로 그칠 일이지만, 괜히 이런저런 공통점을 만들어서 가까운 사이..
모두가 엎드린 순간, 그 경배의 순간에도 의심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사람들 안에, 혹은 내 안에 나와 함께 공존합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사가는 의심하는 이들을 그대로 둔 채 바로 이렇게 상황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18절)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신 후 두려워하던 여인들에게 마주 오셨던 것처럼(28,9) 제자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좁히며 다가가셨습니다. 의심하는 이들이 함께 있는 공동체에게도 다가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우리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때로 믿음이 약해 의심을 하더라도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시듯 그렇게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
정지아 지음. 창비. 피하지 않고 온전히 겪어낸 사람만이 무게를 덜어낼 수 있는 이야기. 살아냈기에 웃으며 할 수 있는 말. 누군가는 킥킥 웃어가며 재밌게 읽었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올해의 책이라고 했다. 제목이 얼마 전 유행했던 드라마 제목과 비슷해서 내심 시원찮을 거라(작가님, 죄송합니다...) 생각하고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뒤늦게 시작해서 나혼자 빠져들었다.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이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짐작은 할 것 같았다. 저녁 반주로 소주를 걸치시고 말없이 노을을 ..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한길사. 2부는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676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었는데 '공평하지 않다와 '고유하다'를 헷갈려하며 읽다보니 시간은 후딱 지났다. 하지만... 수녀인 내가 읽기엔 다소 괴롭기도 했는데(60년대 나폴리의 문화는 정말이지...), 세상은 우리네 여자들에게 참 지독했더라.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처음 초대받았던 이들은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혼인 잔치 초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갔습니다. 심지어 부르러 온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사람들이 무심하고 잔인할까요. 처음 초대 받은 이들은 그리 '합당한' 사람들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다시 초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임금은 고을 어귀로 종들을 보내어 아무나 만나는 대로 불러오라고 시켰고,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가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예복을 갖춰 입기는커녕 혼인 잔치에 갈 생각조차 없었던 사람들. 준비할 새도 없이 왕자의 혼인 잔치에 임금의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거리를 오가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