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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마태 2,16) #dailyreading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목숨들을 수없이 죽여버리는 잔악무도한 권력자의 횡포… 안그래도 답답한 세상인데 뉴스를 본 후라 복음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무고한 이들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때 우리는 가까스로 살아 남은 아기를 탓할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주춤할 수 있도록 내 자세를 다잡아야 한다.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이다. 이들을 기억하며 식사 후에 서둘러 올라와 내 빨래가 없는 공동 빨래를 개키고 다림질을 했다. 내 빨래가 없으니 나는 오늘 빨래를 널지 않아도, 개키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마음..
우리가 바쳐야할 시간경 중에서 나는 끝기도를 가장 좋아한다. 우리 수도회의 찬미가 멜로디도, 시편들도(특히 91편), '주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라고 노래하는 응송도,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시므온의 노래도, 성모찬송도 모두 좋다. 이번 주 복음에는 “이제는 놓아 주소서” "이제 놓아 주시는도다" "이제 떠납니다" 등으로 번역되는 Nunc dimittis(시므온의 노래)가 나온다. 이제 보았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시므온의 고백. 그는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다. 주님의 그리스도를 보길 희망한 것도 맞지만 시므온은 '보여주시는 때'를 기다렸던 사람이다. 보여주실 때까지 떠나지 않고 머물 줄 아는 것. 그래서인지 우리 수도 서원의 ..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한길사. 제목 때문인지 마지막 4부를 읽는 동안 ‘잃음’을 자꾸 떠올렸다. 세월이 흐르면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 떠나기 위해서는 잃어야만 하는 것들, 내려 놓는 것도 아니고 나눠주는 것도 아닌 잃음. 모셔놓는 것도 아닌, 더 이상 내것이 아니도록, 나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조차 없도록, 다시 찾을 도리가 영영 없도록 잃는 것. 이 나폴리 4부작을 읽기 전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었다. 두 여성의 대하소설을 연달아 읽고, 세상을 대하는 또 다른 시선을 배운다. 이 두 작가가 전해주는 영웅 없이 주인공들로 가득한 세상, 가감 없이 솔직한 인간들의 민낯을 받아들이는 용기, 앞면만 보이는 바른 세상 말고 앞뒤 모두 둘러본 후 만나는 진짜 세상…
캉탱 쥐티옹 글, 그림. 오승일 옮김. 바람북스. 내가 만난 캉탱 쥐티옹의 두 번째 책. ‘코클리코 요양원’에서 일어나는 생애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과 간호사의 이야기이다. 마지막 시간을 생전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서 보내야 하는 것, 정리하고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마저도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들이 아닌 낯선 이들과 보내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대신할 수 없는 것과 대신해도 되는 것.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반비. 새로이 해석되고 새로이 쓰여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리베카 솔닛의 손을 거치길 바라고 또 바란다. p.21 "여러분이 아는 이야기에서는 공주가 백 년 동안 잠을 잤고 공주를 구하러 온 왕자들이 서쪽 탑으로 올라가 공주를 잠에서 깨우고 공주와 결혼해서 주르의 다음 왕이 되려고들 했다고 들었을 거야.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냐." p.28 ~ p.29 "마야는 아주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서 진짜 잘 그리게 됐어. 무언가를 아주 아주 잘하게 되면 마치 마법이나 다를 바 없게 돼. (마법은 그냥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보통은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이루어지지. 무언가를 아주 아주 오래 갈고 닦으면 무척 쉬워 보이니까, 사람들이 '마법 같..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루카 1,34-35) #dailyreading 나는 하지 못해도(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그분은 하신다(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묵상과 함께 떠올린 말씀. “안젤로야, 너를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황 요한23세께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일기장에 자주 적으셨다는 이 말을 오늘은 내 마음에 새겨본다. “성심아, 너를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림 제2주일에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이’, ‘그분의 길을 곧게 내는 이’로서 마르코 복음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데요, 이번 주는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세례자 요한에 대해 묵상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춥고 메마른 땅 광야에 홀로 살면서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른 채 메뚜기와 들꿀만을 먹고 살 만큼 강단이 센 사람. 아니다 싶은 사람에겐 가차 없이 독화살 같은 말을 쏘아대기도 했고 예수와 버금가는 세력(당대엔 더 큰 무리의 제자를 두었다)을 오랫동안 유지할 만큼 권력형 사람. 예수 출현 이후 스스로 물러나 광야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끝까지 가장 큰 '목소리' 역할을 한 사람. 초야에 묻혀 사라지는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