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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캘리포니아에서도 동백은 이렇게 서럽다. 핏빛으로 물든 채 시들지도 않은 목숨들이 봉오리째 떨어져 내리는 이 시대를 상징하듯 오늘, 18대 취임식에 맞추어 시들지도 않은 동백이 봉오리째 툭툭 떨어져 내린 회색 거리. 며칠 전 불끄고 누우니 창밖으로 바람이 꽤나 불어대길래 꽃잎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하다가 꽃보다 더한 것도 떨어지는 세상인데 싶어 그냥 자버렸는데... 오늘 취임식이다 뭐다 부산한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다가 속절없이 떨어져내린 무수한 생명들을 떠올리고 있다. 초콜렛을 네 개째 까먹고 있다. 오늘따라 인생이 너무 쓴 게야.
드디어 고 최강서 님의 장례를 치뤘다. 배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세상을 향해 깃발을 흔들더니 급기야 꽃상여까지 짓더라마는... 수많은 통곡과 설움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드디어 하늘에 가 닿는다. 요즘 나의 평상복이 검은옷이라 아무도 모르게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구나. 부디 평안히 쉬시기를,그러나 이땅의 모든 아프고 옳은 이들을 위해 하늘에서도 애써주시길 감히 청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종교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다. 그리곤 많은 이들이 그 평화를 얻지 못해 뒤돌아섰다. 이들이 원하던 '평화'는 과연 무얼까. 난,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아픈 적이 더 많았다.이 좁은 가슴을 세상을 품어보려 마음을 열면 열수록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출렁거렸다.하지만 난 이들 두고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다고는 말하지 ..
이곳에 오기 전 본원에서 종신서원 때 받은 선교사 십자가를 걸고 선교사 파견식을 받았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또 십자가를 받았다.그레고리성당 신자들은 사순시기 동안 십자가를 걸고 다녀야 한다고... 눈에 드러나는 십자가를 목에 걸고 신자임을 드러내야하는 어색함을 견뎌야 하고,십자가를 건 순간부터, 십자가를 의식하게 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그 무게와 불편함도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너무나 가까이 느껴지는 십자가의 낯설음도 인정해야 하고,가끔은 무심결에 십자가로부터 상처도 입어야 한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14)
-시작하면서- 예수님, 저희는 오늘 이 십자가 길을 걸으며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당신과, 스스로 감내해야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걷고 있는 세상 모든 이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당신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또한 저희의 삶 역시 우리 자신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님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 그 시작은 사형선고입니다. 당신을 따라나선 우리도 이제 내 안의 가려진 욕망, 이기심, 자기연민에 사형선고를 내리며 첫걸음을 내디딥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순교의 모든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는 순간이 바로, 저희가 걸어야할 십자가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예수님, 저희는 이미 세상에 죽고 ..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시더니, 당신께서는 저희보다 먼저 십자가를 지고 앞장 서십니다. 십자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 자신을 버려야 진정 십자가를 질 수 있음을 보여주시니 저희도 주어지는 모든 상황에서 ‘나’를 버리게 하소서. 씨앗을 심기 위해 먼저 돌을 골라내듯 십자가를 내 몸에 심기위해 뿌리 깊은 '내 뜻'을 버리고 나의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육중한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결국 당신은 넘어지셨습니다. 당신은 저희의 죄 때문에 넘어지시는데, 저희는 한낱 자아의 욕심에 눌려 넘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왜 넘어져야만 하는지 아직도 온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저희의 죄는 당신을 넘어지게 하고 저희 자신도 넘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넘어짐도 십자가 길의 일부이기에, 고통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당신이 저희를 위해 마련하신 때에 기꺼이 넘어지게 하소서. 넘어지는 순간에도 당신을 사랑하겠나이다.
십자가 길에서 만나신 성모님이 당신께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는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알겠습니다. 저희는 턱없이 부족하오나,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성모님 같은 수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의 끝없는 인내와 희생, 지극한 사랑이 당신께 둘도 없는 위안이 되었던 것처럼 저희의 인내와 희생, 지극한 사랑이 세상에 더없는 위안이 되게 하소서. 하오나 저희는 나약하오니, 힘들고 지쳐 어머니를 부를 수조차 없을 때 어머니, 저희를 만나주소서.
금방이라도 허물어져버릴 것 같은 당신의 모습과 피곤에 지치고 마음 아파하는 이웃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예수님, 지금 저희에게 당신의 그 십자가를 주십시오. 당신의 십자가는 애초부터 저희 모두의 것이기에,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 역시 바로 저희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하오니, 행여 무슨 큰 도움이라도 주는 양 너그러운 척 할 것이 아니라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임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도운 사람으로 시몬을 기억하듯, 저희의 이름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돕는 수도자'라는 이름만 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