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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피땀으로 얼룩져 일그러진 당신의 얼굴이 보입니다. 제 삶의 길에서 넘어지고 쓰러져 홀로 울고 있을 때 제 눈물을 닦아주시며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던 당신이 보입니다. 제 자신과 수도공동체의 쇄신, 저희의 기도가 절실한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이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작고 소박한 것의 가치를 자꾸만 놓치며 살아갑니다. 주님, 지금이라도 저희들을 위해 피땀 흘리신 당신 얼굴을 닦아드릴 수 있는 은총을 저희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 당신은 또 넘어지십니다.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저희들의 아둔함으로 당신은 또 넘어지셔야 했습니다. 당신을 외면하고 이웃의 고통도 온전히 안아주지 못한 저희를 대신해서 넘어지신 예수님, 이제 저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진정 당신과 함께 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넘어짐도 수치와 모욕이 될 수 없사오니, 예수님, 당신과 세상 모든 이를 위한 희생과 봉사와 인내의 넘어짐을 기꺼이 저희에게 허락하소서.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울고 있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당신의 고통을 바라보며 우는 것, 이웃의 아픔을 바라보며 연민의 마음으로 우는 것이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이제 제 자신을 위해 웁니다. 저의 죄에 대해서, 저의 불충실함에 대해서 웁니다. 저의 못남으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제 이웃을 보며 웁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함으로써 참된 신앙인이 되고 참된 수도자가 되도록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은 이제 십자가를 질 힘만 남았습니다. 땀을 닦을 힘, 부당함에 눈물 흘릴 힘, 신음소리를 낼 힘조차 없고 오로지 십자가를 질 힘만 남은 예수님. 하지만 아직도 저희 안에는 부당함에 투덜거릴 힘, 자기연민의 눈물을 흘릴 힘, 악습을 유지할 힘, 타인을 판단하고 오해하며 심지어 미워할 힘까지 남았습니다. 예수님, 저희에게도 십자가를 짐 힘만 남겨주십시오. 수백 번을 넘어져도 끝까지 일어나 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 제게 힘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 십자가 길은 어디까지입니까? 이토록 극심한 고통이 아직도 멀었습니까? 그들은 침을 뱉고 모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옷까지 벗겼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을 가리던 모든 것들이 벗겨졌을 때에도 의연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도 자존심의 겉옷, 위선의 겉옷을 벗어버리게 하소서. 그 어떤 모욕도 당신을 ‘예수님’일 수 없도록 하지 못했으니 저희가 맛보게 될 그 어떤 수치스러움도 저희를 당신과 떼어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당신을 따르는 십자가 길에서마저 끝까지 저희를 따라오는 욕망들이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 잠시 고백) 이제 저희의 욕망들을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겠습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십자가 아래에서 열리는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 행복이라 여겨질 그날까지 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당신과 함께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예수님, 당신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당신의 죽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기에 저희가 걷는 이 길은 이제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완성됩니다.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당신의 모습에서 세상의 가장 고귀한 사랑을 발견합니다. 주님, 저희가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자아의 죽음을 택할 때마다 세상에 당신 십자가의 사랑을 드러내는 수도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저희가 순교의 초대에 응할 때마다 세상에는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할 것입니다. 당신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